날짜에 비해 너무 많이 앞서간 무더위와, 무더위에 비례해 더 많이 앞서간 짜증과 피로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온유하지 못했고 참고 견디지 못했으며,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저 겨우 현실에 절충하며 교통신호 한 번 지키기도 힘든 운전자였다. 슬픈 눈을 갖고 있는 운전자. 불교 용어를 잠깐 빌리자면, 세상은 고(苦)의 연속이고, 그 고(苦) 속에 여러 겹의 인연을 도통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좀 슬펐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사진을 다시 보았다. 이 멋진 사진을 보며 이렇게 작은 미물이, 작은 생명이 그들의 이기심으로 툭닥툭닥거리는 세상, 따위로 시작하는 진부한 교훈이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난 애써 더 생각하지 않았다. 뻔한 레파토리는 지겨운 것. 게다가 그렇게 마음 넓은 척 해봤자 어차피 계속 좀생이 같은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별스럽지 않게 사진을 넘기려는 순간, 사진의 제목이 '꿈꾸는 하늘'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또 다시 멈칫했다. 단계를 나누기 어려운 아름다운 하늘 색깔과 함께 독특한 형체의 구름이 두둥실 떠 다니는 사진. 하늘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은 살짝 미소짓고 있으리라.

  꿈꾸는 하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에 찌든 내게 그런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확실한 오해가 있었다. 꿈은 나만 꾸는 줄 알았다. 아니다, 그게 정말 아니었다. 하늘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나같은 사람들 여럿이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하늘도 자기 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꿈에 나도 취해, 저 구름에 내 몸도 함께 실려 잠시만 두둥실.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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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로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캄캄한 시야를 밝혀주는 건 작은 랜턴 하나 뿐이었다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알 수 없을 것 같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헤쳐간다

 

 

              *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내 식으로 인정하고

그도 나를 그 식으로 인정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조명은 꺼졌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 확고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그는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걷어내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알 수 없을 것 같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두렵지만, 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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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항상

거칠고 울퉁불퉁하기만 한 나를

이렇게 한 몸 돌보기도 힘든 나를

사포처럼 맨들맨들하게 다듬어준

너는 선반 기술자 같아

 

계속 실수 투성이인 나를

너그럽게 봐주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회에 기회를 얹어준

너는 의젓한 카운슬러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너 아니면 여기서 터를 잡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열의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왜 이렇게 나에게 너는

커다란 의미가 되어버렸을까

 

왜 이렇게 나에게 너는

더 강하게 이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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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올해도 잊지 않고 거기 피어줘서

 

고마워

보고싶은 그 애 소식도

거기 같이 피어줘서

 

 

 

(글-직접 작성, 사진-www.paperda.com '사진방'에 있는 하이헬로 님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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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저녁, 회사에서 돌아와 그동안 한껏 복잡해진 기분을 정리하고 싶었다. 쓸데없이 쌓인 고지서나 잡다한 종이를 버리기 시작했다. 많은 카드와 편지들. 그렇게 책상 정리를 하다가 한참을 울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가 쓴 카드를 보고는.

 

 

  사랑하는 내 아들! 내년에는 이 카드를 쓸지 모르지만, 내 아들 늘 고생하고 이 늘은 부모를 고생을 너무 만이하는구나. 너무 고막고 향상 건강하기를 주님께 빌거야.

                                                                                                                  - 엄마가

 

 

  이 카드를 처음 받았던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울었고, 오늘도 울었다. 엄마가 진짜로 어디로 간 것도 아닌데, 엄마 글씨는 너무 많은 눈물을 담고 있어서 내가 너무 힘들다. 70대,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엄마 모습과 '내년에는 이 카드를 쓸지 모르지만'이란 문구가 겹쳐져 나를 정말 괴롭게 한다. 엄마 말대로, 정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엄마는 틀림없는 분이셨다. 섬세하고 꼼꼼하신 분. 무엇보다 자식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분이셨다. 그렇게 아들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생일에도, 엄마는 나에게 카드를 써 주셨다.

 

 

  하고싶어 하는 일 다 잘되었음 좋겠다. 사랑한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사랑하는 아들. 메리 크리스마스.

                                                                                                                  - 엄마가

 

 

  생일인데 맛있는것도 많이 먹고 건강하게 몸을 보호해야지. 사랑하는 아들, 생일 축하해.

                                                                                                                  - 엄마가

 

  물론 이 글을 통해 엄마와 나의 오랜 기간 이어진 많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휘발성 강하고 둔탁한 내 글로 엄마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삐뚤빼뚤한 엄마 글씨로, 엄마 말투로, 엄마 어휘로 쓴 카드를 보며 나는 내가 보았던 엄마의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가난과 고생으로 점철된 처절한 날들이 느껴진다.

  못난 아들만 바라보는 엄마의 사랑을 언제쯤이면 다 알 수 있을까. 큰 아들이 당신보다 먼저 이 세상과 작별했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생활비 드리고, 같이 사는 것만으로 작은 아들된 본분을 다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몸도 힘드신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춥다. 무섭다. 자신감은 바닥나고,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날이 하루씩 없어진다. 이 무서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무섭다. 실컷 울었지만 또 울고 싶다.

  슬프고 슬픈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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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29. 23:26
이제 도착했구나

기억나니
오후의 저 벤치
저 멸치국수집
저 기차역의 플랫폼

눈에다 묻고
입에다 묻고
마음에다 묻고
잘 견뎠지

이런 저녁
다시 안 올지 몰라
 
기도문처럼

흩어지는

 

- 여태천의 詩, '발자국'

 

 

 

  매일 보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다, 6호선 월곡역 스크린 도어에 이런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시가 있을 줄은.

 

  '죽을 死선'보다는 한결 나은 6호선 출근길이지만 언제나 타인에, 내 마음에 부대끼는 이 곳에서 시 안의 그-조금 어려운 말로 시적 화자-는 항상 아련하다. 바쁜 출근길 한가운데 놓인 나는 항상 아련한 그를 보고 있지만 모른 체 해왔다.

  이제 더 이상 넘어갈 수 없어서, 오다가다 차오르던 감정이 가득해서, 조금씩 그렁그렁하던물이 샘솟아서, 내 블로그에 적고 말았다.

 

  그는 그녀와의 추억이 묻어나는 오후의 저 벤치, 저 멸치국수 집, 저 기차역의 플랫폼에 다다른 듯 하다. 켜켜이 쌓인 먼지 같은 기억들은 아직 그 안에 살아있다. 그는 벤치에서 조금 늦게 오는 그녀를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둘이 멸치국수 집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했을 지도 모른다.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그녀를 만났을 수도, 기다렸을 수도, 혹은 그녀와 헤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내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그 곳에 녹아있겠지.

 

  으로 전해지는 그때 그 풍경들. 그녀의 얼굴과 옷차림, 습관들.

  로 들은 그때 그 바람 소리, 그녀 특유의 목소리.

  으로 말한 사랑 노래. 진심어린 이야기들. 미래에 대한 다짐들.

  마음으로 나누었던 그녀와의 교감. 수 많은 약속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이제 과거의 산물이고, 이제는 묻어야 한다는 것이다. 묻은 채 그녀를 잊을 수 있을 때까지 견디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무심한 세상이 그녀와의 모든 기억을 괄호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생각보단 잘 지내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불행 중 불행이었다. 그만의 전매특허였던 그녀와의 추억도, 이제 세월의 흐름에 침식되어 점차 둔탁한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요즘 그녀와의 거짓말 같은 추억의 파편들이, 이제는 모두 마모되고 분실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지고 있었다. 오늘처럼 너무나 그녀가 보고 싶어 상념에 젖었던 나날들이 다시는 안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 농도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그녀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는 절절한 기도문은 공기에 세분화되어 흩어져가고 있었다.

 

  머릿속의 수 많은 생각들과 길고 절절한 이야기가 이토록 짧은 시어 안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시를 보자마자 아프고 아픈 사랑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실크로드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매일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한 출근길에 깊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가끔은 이 시가 적힌 월곡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진실한 존재라는 마음, 진정으로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일까. 이 시, 뜨겁고 절절한 「발자국」을 보며 나도 이런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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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24. 15:03

 

 

생각해보면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넘어설 때

공들여 한 일보다 조금씩 넘는 범위를 요구할 때

꽁무니만 쉼 없이 좇다 지치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해가 질 무렵 하늘이 온통 아름다운 색일 때

되어있는 것은 없는데 해야할 것은 너무 많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한숨만 쉬곤 했다

 

여러 가지 일로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일로 피곤했다

도대체 어려움은 피곤함은 언제까지일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저 조금만 쉬겠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잠깐이라도 제 책임을 모두 내려놓고 싶습니다

 

호기로운 말을 던질 수도 없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없이

내 의지대로 걷는지 상황에 의해 걸어지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지나가는 무심한 오늘

 

 

(글-직접 작성, 사진-www.paperda.com 사진방 중 닉네임 '결국엔독백' 님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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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22. 15:10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소설 읽어본 적 있니? 나 역시 원문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어떤 작가님의 소설에서 다룬 부분을 살짝 들여다본 정도였지만. 그 글에서 서로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나와.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기반을 잡기 위해 곰스크라는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지. 하지만 어떤 사정이 생겨 남자와 여자는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채 중간에 내리게 돼. 내린 곳, 그러니까 중간 경유지에서 여자와 남자는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며칠 더 지내게 되고, 또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또 이 곳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은 결국 곰스크로 가지 않은 채 거기서 일생을 지내게 된다는 내용이야.

  이 글에서 우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곰스크로 가면 행복했을 텐데’, 혹은 굳이 곰스크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더 나은 걸 택했어, 지금 행복하면 그만이지. 결국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이 정도? 나도 비슷했던 것 같아.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B(Birth)D(Death)사이에 C(Choice)가 있다는 교과서적인 말을 굳이 안 꺼내도 알 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겠지. 무엇을 먹느냐, 지금 무엇을 하느냐, 부터 시작하여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서 어느 회사에 입사하느냐, 무슨 사업을 하느냐 등. 그런데 그거 알아? 지금 같이 숨 쉬는 너와 나, 이 두 사람.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면 이 도상(途上)에서 서로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거 정말 신기하지 않아? 이렇게도 너를 향한 길은 좁았지만, 이렇게 만났다는 게.

  나만 해도 세상에서 많이 엎어지고 넘어지고 상처를 입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지. (물론 너도 세상 사느라 힘들겠지만) 지금도 뿌듯함과 후회는 내 삶에서 빠지지 않고 주렁주렁 맺혀있어.

  하지만 난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 내가 그냥 지난 회사에 계속 다녔거나 대학원에 갔거나 이제는 가버린 어떤 이성과 잘 되었다면, 그렇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틀었거나 턴을 했다면, 너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정말 많은 곰스크 중에 하나를 택했다면, 머물렀다면 너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을.

  요즘 우리는 이러저러한 외부 상황 때문에 힘들었지. 특히 나는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물 곰스크는 너라는 생각 때문이어서 그랬을까. 이렇게도 책임지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하지도 않는 내가, 많은 어려움에도 그냥 머무르려 하다니 말이야.

  세상 일, 참 모르겠지? 이런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거. 앞으로도 쭉, 괜찮겠지? 우리에겐 항상 그분이 계시니까. 더 큰 책임감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겠지만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시는 그분을 믿고 의지하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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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너와 나는 길 끝에서 웃고 있을까

 

길은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

아직 네 삶은 다 지나간 게 아니라고 할까

어제는 잔뜩 흐렸지만 오늘은 밝고 맑아졌듯

그냥 이 길을 쭉 걸어가면 되는 거라고 할까

 

아니면

이렇게 그분께서 맑은 하늘과 양지바른 땅을 주셨으니

너와 너를 둘러싼 모든 것은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

 

푸르른 초원과 새하얀 구름은

달리는 우리를 기쁘게 맞아줘서 기뻐

눈부신 너도 내 옆에 있어줘서 기뻐

이 길 끝에 놓인 희망을 품어줘서 기뻐

 

적어도 손익계산서나 대차대조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고차방정식이나 로그 같은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이 축복된 낮이 저물지 않기를 기대하며

 

부디 행복하기를, 편안하기를

 

 

(글-직접 작성, 사진-페이퍼다닷컴www.paperda.com '사진방'에서 '익숙한불편함' 님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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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본역 대합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닌자 거북이 등껍질을 세 개는 메고 있는 것처럼 피곤한 채 의자에 널려있었다. 사람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산본역으로 들어와 열차를 타려고 들어가고 열차에서 나온 사람들이 출구로 나가며 부산한 발걸음을 계속 남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저리도 바쁜 사람들과는 달리 이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착각했다. 지금 막 무리한 주말 지방 출장을 마친 난 어렵사리 도착한 이 곳,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산본역의 희미한 불빛 하나만이 지친 영혼을 맞아준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를 갑자기 툭 밀치는 어떤 손길이 느껴졌다. 벙어리장갑을 끼고 따뜻한 코트의 모자를 눌러써 시야가 제한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눈을 들어 나를 친 사람을, 아니 나를 환기시킨 어떤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줄곧 기다렸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 딴 자리로 가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약간, 아주 약간 밀치고 내 옆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류애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이파리 하나가 나를 건드려도 폭발할 정도로 피곤이 극에 달해있는 사람 축에 속해 있었다. 나는 한껏 젖은 채로 늘어진 오징어처럼 퍼진 내 몸을 가다듬은 채 아저씨 옆자리를 포기하였다. 대신 아무도 앉지 않은 다른 긴 의자에 내 몸을 포개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같은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쉴 시간을 마련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사실을 잊었다. 정리되지 않은 짐을 산더미처럼 안고 있는 내게는 더 이상의 생각이 들어설 틈 같은 게 없었다. 그저 나는 이 순간 심신을 정리하며 또 다른 누군가와의 긴장되는 만남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게 산적해 있는 내 문제에 관해 고민하였다.

  수 분 후. 그렇게 머리를 싸매며 눈을 감다가 잠시 눈을 떠 보았다. 아까 내가 자리를 떴던 그 의자의 아저씨가 뜬 눈 안에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와 아저씨 경계에 있는 한 남자는 그 또래의 다른 남자와 맥주 캔을 들고 과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사가 시끄러워 이야기 내용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냥 눈으로 봐도 두 남자는 굉장히 정이 돈독한 친구, 혹은 매우 잘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수십 분 후. 두 남자는 각자의 일당 같은 캔맥주 한 캔씩을 다 마신 듯 찌그러뜨리고는 익숙한 손길로 의자를 정리한 채 자리를 뜨고 있었다. 추운 대합실에서, 그 남자들은 서로 자신의 손을 서로의 손에 의지한 채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처량하고, 또 처량했다. 두툼한 손과 가는 손이 서로를 잡은 모습이 애틋해서일까. 남자끼리 손을 잡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굉장히 낯간지럽고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려 애틋하다는 감정을 느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별 일 아닌 일이라고 치부된 채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는, 이토록 굴절된 시각을 가진 나에게는 이 광경이 정말 생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솔직히 정말 먹먹한 감정을 숨길 길이 없었다. 이토록 쌀쌀한 산본역 대합실에서, 변변한 안주 하나 없이 캔맥주 하나씩만을 마주 하고, 정이 넘쳤을 것 같은 이야기를 짧지 않게 나누다가, 결국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떠나던 모습은 우리는 외롭다는 명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장면. 그런 모습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삐삐가, PC통신과 채팅이, 핸드폰이, 컴퓨터 메신저가, 매 순간 만지는 스마트폰이, 각종 SNS, 스마트폰 메신저나 게임이, 우리가 살아 있고 잘 있다는 걸 열심히 우리 같은 타인에게 부지런히 알려야 하는 외로움에 젖은 우리가, 추운 곳에서 캔맥주 한 캔을 마시고 서로의 손을 의지한 채 길을 나서야 하는 쓸쓸한 두 남자와 합치된 순간이었다.

  세상 풍파를 모조리 알아버린 우리 어른들과 풍경 속의 두 남자가, 누구를 만나든 그렇지 않든, 결혼하든 혼자 살든,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와 상관없이 우리 옆에 항상 있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우리는 감추려하지만 여지없이 드러나버리는 현실이, 보여주기 싫지만 이미 입은 티 다 나는 내복처럼 뭔가 멋쩍은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이토록 거친 손이, 서로의 손을 의지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제까지는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외로움이나 어려움 하나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힘든 세상 속에서라 자위해보지만 소용없는 헛손질이라 느껴지는 것은 내 잘못된 생각일까. 왜 난 살갑게 손을 잡거나, 눈앞에 풍파가 일어나도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들을 보면 거역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외로움만 보이는 것일까.

  그 때, 나는 내 스마트폰에도 진동이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였다. 내가 만나야 할, 기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야 하는, 운명 같은 누군가. 그 사람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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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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