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앞에는 커다란 호수와 두툼한 눈밭

건너편에서 너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데

닿을 수 없는 우리 사이엔 더 이상 무엇도 닿지 않았다

 

운명은 우리를 거슬러 더 멀리 가라고 했다

눈물 같은 게 땅에 떨어졌지만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내 말은 바람소리 탓에 들리지 않았고

내 눈빛은 눈부신 햇살 탓에 옅어지고 있었다

 

전쟁 같은 세상 속에 서 있는 우리,

그 사이를 좁히려면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고비를 넘어야 할까

나는 너 있는 자리에 갈 수 있을까

그 자리에 너는 저기 저 나무처럼 언제까지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놓아지지 않는 네 손을 놓아버리고

운명은 내 눈을 멀게 하고

상황은 네 입을 막아버렸지만

그래도 기억은 자유로워

멀어지는 네 모습을 부단히 네 마음속에 담는다

 

네가 묻어있는 저기 저 나무와 호수, 갈매기에게 내 마음도 듬뿍 묻힌다

너와 내가 그들 속에서만이라도 함께하길 바라며

이제 나도 세상 속에 떠내려간다

너를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네가 없는 세상 속으로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2010년 홋카이도 토야 호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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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봐, 여기 잘 왔지? 답답한 속 트이게 하는 건 바다가 최고라니까,' 하며 너는 말했다. 일요증보판 신문 같은 넉넉한 웃음은 덤이었다. 덕분에 나도 수채화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쉼 없이 활기찬 파도 속으로 내 못난 마음을 밀어넣기로 했다.

  좁아터진 마음, 시기심, 분노 등을 비단으로 곱게 포장하여 군청색 바다 속으로 발송했다.

  바다는 풍덩, 하며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우리 유치하지만 서로의 소원을 빛나는 바다 속에 풀어놓자.

  그래, 좋아.

 

  좀 더 온유해지자, 겸손해지자, 의연해지자고 생각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바다가 주는 맑은 공기를 하루 한 번 꼭 먹어야 하는 내복약처럼 모조리 털어넣었다.

  너도 나처럼 너의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 보며 계속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우리 서로 같은 소원이었길 빌어,' 하며 너는 말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너와 나는 한참을 백사장에 서 있었다.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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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에 비해 너무 많이 앞서간 무더위와, 무더위에 비례해 더 많이 앞서간 짜증과 피로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온유하지 못했고 참고 견디지 못했으며,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저 겨우 현실에 절충하며 교통신호 한 번 지키기도 힘든 운전자였다. 슬픈 눈을 갖고 있는 운전자. 불교 용어를 잠깐 빌리자면, 세상은 고(苦)의 연속이고, 그 고(苦) 속에 여러 겹의 인연을 도통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좀 슬펐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사진을 다시 보았다. 이 멋진 사진을 보며 이렇게 작은 미물이, 작은 생명이 그들의 이기심으로 툭닥툭닥거리는 세상, 따위로 시작하는 진부한 교훈이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난 애써 더 생각하지 않았다. 뻔한 레파토리는 지겨운 것. 게다가 그렇게 마음 넓은 척 해봤자 어차피 계속 좀생이 같은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별스럽지 않게 사진을 넘기려는 순간, 사진의 제목이 '꿈꾸는 하늘'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또 다시 멈칫했다. 단계를 나누기 어려운 아름다운 하늘 색깔과 함께 독특한 형체의 구름이 두둥실 떠 다니는 사진. 하늘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은 살짝 미소짓고 있으리라.

  꿈꾸는 하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에 찌든 내게 그런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확실한 오해가 있었다. 꿈은 나만 꾸는 줄 알았다. 아니다, 그게 정말 아니었다. 하늘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나같은 사람들 여럿이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하늘도 자기 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꿈에 나도 취해, 저 구름에 내 몸도 함께 실려 잠시만 두둥실.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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