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역 대합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닌자 거북이 등껍질을 세 개는 메고 있는 것처럼 피곤한 채 의자에 널려있었다. 사람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산본역으로 들어와 열차를 타려고 들어가고 열차에서 나온 사람들이 출구로 나가며 부산한 발걸음을 계속 남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저리도 바쁜 사람들과는 달리 이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착각했다. 지금 막 무리한 주말 지방 출장을 마친 난 어렵사리 도착한 이 곳,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산본역의 희미한 불빛 하나만이 지친 영혼을 맞아준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를 갑자기 툭 밀치는 어떤 손길이 느껴졌다. 벙어리장갑을 끼고 따뜻한 코트의 모자를 눌러써 시야가 제한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눈을 들어 나를 친 사람을, 아니 나를 환기시킨 어떤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줄곧 기다렸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 딴 자리로 가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약간, 아주 약간 밀치고 내 옆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류애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이파리 하나가 나를 건드려도 폭발할 정도로 피곤이 극에 달해있는 사람 축에 속해 있었다. 나는 한껏 젖은 채로 늘어진 오징어처럼 퍼진 내 몸을 가다듬은 채 아저씨 옆자리를 포기하였다. 대신 아무도 앉지 않은 다른 긴 의자에 내 몸을 포개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같은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쉴 시간을 마련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사실을 잊었다. 정리되지 않은 짐을 산더미처럼 안고 있는 내게는 더 이상의 생각이 들어설 틈 같은 게 없었다. 그저 나는 이 순간 심신을 정리하며 또 다른 누군가와의 긴장되는 만남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게 산적해 있는 내 문제에 관해 고민하였다.

  수 분 후. 그렇게 머리를 싸매며 눈을 감다가 잠시 눈을 떠 보았다. 아까 내가 자리를 떴던 그 의자의 아저씨가 뜬 눈 안에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와 아저씨 경계에 있는 한 남자는 그 또래의 다른 남자와 맥주 캔을 들고 과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사가 시끄러워 이야기 내용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냥 눈으로 봐도 두 남자는 굉장히 정이 돈독한 친구, 혹은 매우 잘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수십 분 후. 두 남자는 각자의 일당 같은 캔맥주 한 캔씩을 다 마신 듯 찌그러뜨리고는 익숙한 손길로 의자를 정리한 채 자리를 뜨고 있었다. 추운 대합실에서, 그 남자들은 서로 자신의 손을 서로의 손에 의지한 채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처량하고, 또 처량했다. 두툼한 손과 가는 손이 서로를 잡은 모습이 애틋해서일까. 남자끼리 손을 잡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굉장히 낯간지럽고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려 애틋하다는 감정을 느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별 일 아닌 일이라고 치부된 채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는, 이토록 굴절된 시각을 가진 나에게는 이 광경이 정말 생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솔직히 정말 먹먹한 감정을 숨길 길이 없었다. 이토록 쌀쌀한 산본역 대합실에서, 변변한 안주 하나 없이 캔맥주 하나씩만을 마주 하고, 정이 넘쳤을 것 같은 이야기를 짧지 않게 나누다가, 결국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떠나던 모습은 우리는 외롭다는 명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장면. 그런 모습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삐삐가, PC통신과 채팅이, 핸드폰이, 컴퓨터 메신저가, 매 순간 만지는 스마트폰이, 각종 SNS, 스마트폰 메신저나 게임이, 우리가 살아 있고 잘 있다는 걸 열심히 우리 같은 타인에게 부지런히 알려야 하는 외로움에 젖은 우리가, 추운 곳에서 캔맥주 한 캔을 마시고 서로의 손을 의지한 채 길을 나서야 하는 쓸쓸한 두 남자와 합치된 순간이었다.

  세상 풍파를 모조리 알아버린 우리 어른들과 풍경 속의 두 남자가, 누구를 만나든 그렇지 않든, 결혼하든 혼자 살든,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와 상관없이 우리 옆에 항상 있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우리는 감추려하지만 여지없이 드러나버리는 현실이, 보여주기 싫지만 이미 입은 티 다 나는 내복처럼 뭔가 멋쩍은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이토록 거친 손이, 서로의 손을 의지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제까지는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외로움이나 어려움 하나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힘든 세상 속에서라 자위해보지만 소용없는 헛손질이라 느껴지는 것은 내 잘못된 생각일까. 왜 난 살갑게 손을 잡거나, 눈앞에 풍파가 일어나도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들을 보면 거역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외로움만 보이는 것일까.

  그 때, 나는 내 스마트폰에도 진동이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였다. 내가 만나야 할, 기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야 하는, 운명 같은 누군가. 그 사람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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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20.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