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늘어나면서, 느끼는 것들.

 

말하지 않은 것들이 언급된 것보다 더 많다는 것.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이미 말한 사실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

저마다 품고 있는 마음은 제각각이지만 세상과 절충하느라 그 마음을 열에 하나도 미처 꺼내지 못한다는 것.

 

인간극장을 누구나 찍는다는 것.

사람마다 펼치지 못한 아쉬운 순간이 있다는 것.

별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무한대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

 

애써 잘난 척, 있는 척 하는 모습이 대부분 손해라는 것.

싫어하거나 마음가지 않는 사람에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

튀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것.

 

어렸을 때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졌으면서도 정작 아무 만족도 못한다는 것.

삼십 대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보다 무서운 게 더 많다는 것.

그럼에도 멋있게 보이려면 무서운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를 지켜줄 파라솔이 언제나 우뚝 서 있을 거라고 오해한 것.

 

난 이토록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많이 뱉었다는 것.

그렇게 소통에는 영 잼병이었다는 것.

나의 자만과 착각으로 당신의 마음을 더 어둡게 했다는 것.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작심삼일을 못 벗어난다는 것.

태도도, 행동도, 몸도, 마음도, 너에 대한 사랑도,

결국 모든 것이 내 위주, 나 먼저였다는 것.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 뱉어버린 말은 가장 멋진 클리셰라는 것.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죄송하지만, 이라는 겉 같은 단어를 쓰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

그 가운데 으뜸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것.

 

매일 나만의 가면놀이를 하면서

오늘은 파란 가면, 어제는 노란 가면을 골라쓰면서

해가 지는 밤이 오면

그래도 오늘도 열심히 했어, 라며 혼자 자위하는 것.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29. 23:14

저번에는 산딸기 주스 언덕에서

이번에는 키위 주스 언덕에서 쉬며 당신을 생각해요

 

몸은 좀 어때요? 괜찮은가요? 잘 잤나요?

비가 와서 삭신이 쑤시지는 않나요?

어제는 비가 세차게 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졌어요

이런 날에는 당신을 만났어야 했는데

어제는 당신 생각에 밤에 잠도 못 이루었답니다

 

자다 깨면 당신 모습이 저 멀리 날아갈 것 같아서

손아귀에 쥐고 있던 당신 얼굴이 없어질 것 같아서

맛있는 생선을 뺏기기 싫은 고양이의 마음으로

여기 이렇게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답니다

, 기특하죠?

 

다정하고 알뜰한 당신

미쁘고 아름다운 당신

아무 이유 없이 꽃다발 한 아름 안겨주고 싶은 당신

그래요, 거기 계속 계세요

 

세상 모든 것이 변하지만 내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약속은 하지 않을래요

나는 변액 보장 보험이 아니니까요

저기 저 화장실에 누군가 써 놓은 낙서보다

가로수에 새겨놓은 하트표시보다

내 맹세가 오래갈 자신이 없거든요

 

내가 당신께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숙제를 잘 해오는 모범생 어린아이가 갖고 있는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얼마간의 생색 뿐

 

, 잘했죠?

당신 옆에 지금 있는 것

당신만 바라보는 것

영원보다 개근을 약속하는 것

모두 다 잘했죠?

 

상큼하고 시큼한 키위 같은 하루가 저물며

뿌듯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휴일의 끝자락, 닿고 싶은 당신에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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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28. 17:03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러니까 사랑은행에 우리 명의의 적립적금을 넣은 후로, 어찌된 일인지 오빠는 나에게 좀 이상해졌어. 이상하다는 말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말이잖아. 왜냐하면 우리를 본 다른 사람들은 우리 관계에 대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때가 되면, 즉 내가 생일이 되거나 만난 지 백일, 이백 일 이럴 때 선물을 해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어딘가로 놀러가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정상적인 커플이고, 행복하게까지 느껴지는 한 쌍이었지.

  하지만 정작 나는 오빠의 모습에 다정함이 묻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어. 물론 오빠는 마치 영토를 무한대로 확장시킨 알렉산더처럼, 목표를 다 채운 제약 영업사원처럼 내게 잘해주는 행동을 근거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긴 했지. 나는 눈부신 백이나 신발 같은 것을 전리품으로 얻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오빠 하나뿐인데, 그게 다가 아니잖아. 오빠의 행동에는 정량적인 것은 있었지만 정성적인 것은 전혀 없었지. 이상하리만치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마음이나 날 아껴주는 감정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거야.

  왜 그럴까. 오빠는 왜 나에게 정형화된 사람이 된 걸까.

  그런 오빠의 행동이 몇 달이나 지속되면서 나는 오빠의 행동에 뚜렷한 패턴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어. 오빠는 일주일에 한 번, 틀림없이 나를 만났고, 밥을 먹었어(밥값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가 냈지). 밥을 먹은 후에는 오빠는 에스프레소를, 나는 카페라떼를 먹었고. 최신 개봉작 영화를 본 후에 우리 집 앞까지 바래다줬어. 집 앞에서는 내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헤어졌지. 은색 승용차가 붕, 하고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소리마저 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자로 잰 듯한 행동과 나에 대한 일정한 예의. 화도 낼 줄 모르고 똑같은 오빠의 감정. 이런 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면 뭐겠어. 이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나는 한참 같은 유행어가 반복되는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처럼 오빠가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그 다음 말을 알아차리게 되었어.

  어느 날 난 오빠에게 따져 물었지.

  “오빠, 우리 만날 똑같은 것만 하니까 지루하다. 딴 것도 좀 하면 안 돼요? 나 빙수 먹고 싶은데.”

  “오빠, 오늘 너무 재미없어. 우리 재미있는 거 없을까요?”

  그럴 때마다 오빠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어. 그러면서 정작 오빠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지. 오히려 정형화된 데이트의 형태가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런데 난 오빠에게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 이유야 어쨌든 오빠의 똑같은 데이트는 날 편안하게 해주었으니까. 속 썩이지 않고, 바람피우지도 않고, 내 말도 잘 들었고, 오빠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시간이 흘러갔으니까. 싸우다가 헤어진 커플이 차고 넘치는데 내가 정형화된 오빠의 행동을 재미없어하는 것도 배부른 생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

  그러던 어느 날 문자메시지가 왔어.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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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그 여자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뒤로 전혀 오지 않는다. 가끔 여기를 지나다닌다고 했는데, 벌써 2주 동안 안 보였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마치 신데렐라처럼 시간을 걱정하면서 돌아갔다. 붉고 푸르스름하게 온화한 빛을 내는, 생전 처음 볼 만큼 커다란 은색 버스는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신사 끝에서 끝으로 갈 정도의 사이였다.

  정말 이상한 여자아이다. 이상한 점은 그 아이의 옷이나 들고 있던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하는 것도 어쩐지 별났다. 내가 들어 보지 못한 말을 많이 알기도 했지만, 별것 아닌 걸 모르기도 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 아이가 어디에 사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도 이상했다.

  내게는 그 아이가 마치 어디 다른 나라…… 아니, 다른 별에서 온 것 같다. 이 지구와 똑같은 별이 어딘가에 있고 나 같은 여자아이가 살고 있는…… 그 별에서는 모두들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멋진 집에 살고 따뜻한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전쟁 같은 것도 당연히 없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이제 그 아이는 자기 별로 돌아갔겠지.

 

 

  1954년 1월 9일

  아는 사람들 때문에 새엄마가 올지도 모른다. 정말 쓸데없는 참견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될까?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엄마를 단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다시 엄마를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별로 돌아간 소녀야! 부탁이니까 꼭 다시 와 줘. 나를 구하러……. 다시 한 번 엄마를 찾으러 함께 가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나에게 혼자 갈 수 있는 용기를 줘.

 

 - 『별로 돌아간 소녀』, 스에요시 아키코, 이경옥 역, 사계절, 2008, pp.169~170.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분주한 일상을 쪼개어 나는 그저 쓰고 싶었다. 그런 저런 쓰고 싶은 것 중 하나를 여기서 풀어보려 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겠지만, 나는 스에요시 아키코의 판타지 동화인『별로 돌아간 소녀』에 대해 쓰고 싶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독서 스펙트럼이 그렇게 넓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처럼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한가한 날이나, 일을 하던 중이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정독도서관 같은 장서가 많은 도서관 어린이실에 턱하니 들어간다. 그리고는 창작동화 코너에 쳐박혀 있으면서 명작동화전집 중 몇을 고르거나 '제목이 판타지스럽다'든가 '재미있을 것 같은' 동화책, '그림이 예쁜' 동화책을 무작정 집고 읽는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막말로 어떤 일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게 몇이나 있을까. 솔직히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은 무작정 이루어진 것이 많았고,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이 독서의 경우라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지은이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보증수표로 알고 확신을 갖겠지만, 지은이를 모르지만 출판사는 명망있다고 해도 믿고 읽는 편이다. 결국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책은 정통 한국식 생활동화나 서양 혹은 일본식 판타지 동화로 모아진다.

  사람들은 내 취미는 독서고 특기는 글쓰기라(고 하고 싶다)고 하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지만, 그것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독서나 습작을 하는 것은 그냥저냥 굴러들어온 책을 읽고 차오르는 말들을 내 방식대로 꺼내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별로 돌아간 소녀』)도 그런저런 흐름으로 내 앞에 굴러들어온 책들 가운데 하나다. 계속 동화나 수필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단지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로 유명한 사토 사토루의 추천글을 통해 그 선택이 확고해졌을 뿐.

  이 책은 기발하다. 판타지 동화는 기발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퇴색되어버리기 때문에 신선하고 기발한 것이 필수 요건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다. 그 수법이 능수능란하다는 점이 배울만 하다.

  또 이 책은 편안하다. 판타지가 편안하다는 건 쉽지 않다. 편안하다는 것은 순수하게 작자의 출중한 역량이 발휘된 결과다. 이 책은 판타지 동화긴 하지만 그 뿌리는 명확한 현실에 두고 있다. 갈등 요소도 가족, 우정 등을 이야기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할 정도로 탄탄하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를 이야기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자연스럽다. 쉽게 말하자면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고기맛이 난다고 할까. 판타지라면 경극 화장처럼 화려하고 싶을텐데,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특히 판타지 동화를 쓰고 싶은 내게는 더욱 더.

 

 

  이런 잘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놓인 허들의 양감이 마음 가득 느껴진다. 바빠진 업무로 인해 물리적인 시간은 대부분 약탈당했다. 연봉이 적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피곤하면 내 오감과 감성은 잠에 볼모로 잡혀버린다는 것이 내 최대 약점. 또 짧은 기교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차이는 질적으로 더 확연해진다. 뿌연 창문을 닦으면 닦을수록 창밖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더 잘 보이기만 하니 어쩌나. 이미 등단하여 수 권의 책을 낸 내 또래의 '젊은' 소설가들처럼 나도 촉망받고 주목받고 싶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더 무섭고 두렵다. 배울 것은 많고 명확해지는데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 가수 윤종신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 또한 결핍으로 점철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만 확고해진다. 결국 난 놀부처럼 욕심만 부리고 종국엔 실속은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어떤 최측근은 이런 나를 보며 '내가 동화를 쓰기엔 살아온 연륜이 부족하다. 그건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내 동화 습작은 아직 덜 익혀졌다. 오븐에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라리 수필을 빙자한 내 낙서들이 자신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고.

  그럼 난 동화를 더 이상 연습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난 윤동주나 기형도 같은 시인도 아니고 백낙청 같은 평론가도 아니다. 어쩌면 난 그 무엇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리하여 마침내 내 이름이 한 작가의 브랜드로 쇼윈도에 걸리고 싶다는 욕구는 늘 있다. 많은 고민이 있지만 일단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써보기로 한다. 어떤 글을 쓰든 내 삶에 작은 오솔길은 계속 있을 거라 믿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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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26. 13:37

 

어제는 시계가 고장나버려서 내가 뭘 잘못한지 알았지
숨가쁘게 눈 앞만 보고 달려왔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갈 길을 찾아서 행복을 좇아가고 있는데
나는 왜 멈춰 서 있는 걸까

답답한 내 세상 속에 쉼터는 어디 있는 걸까
좀처럼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그 날을 나는 기다리네

 

답답한 내 세상 속에 쉼터는 어디 있는 걸까

좀처럼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꿈 속으로 날 데려가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 속에 기대어
슬픈 일들이 더는 없을 거라 웃어 넘기는 난 너무 기특한걸

엉터리 노래뿐인 멜로디 왠지 그리 싫지만은 않아
오늘은 또 어떤 노랠 부를까 걸음마다 휘파람을 불어보자 

 - '휘파람'(강보라 노래, 오투잼 아날로그 OST 중)

 

 

 

 

 

심심해서 다운받은 오투잼 아날로그

비트매니아와 EZ2DJ의 향수를 되새기고 싶다는 옅은 기대

기대를 가볍게 상회하는 게임성

그것보다 더 마음에 콕콕 박히는 멜로디와 보컬

반갑게도 내게 딱 필요한 농도와 밀도

 

그것은 내가 딱 원하던 산뜻하고 신나는 느낌

한산한 통영대전고속도로 위에 좌우로 선 나무를 배경으로 바람을 만끽하는 느낌

적당한 얼음을 뒤섞은 시원한 언더록 음료수를 마시는 느낌

 

인생이란 인생사란

가볍고 가볍고자 해도 인위적으로는 잘 되지 않던 일 투성이

무겁고 무겁던 내 마음에 산들산들 부는 상큼한 바람

 

그래,

어깨에 힘을 빼고 손목에 힘을 줄이고

책과 음악 덕분에 뜨거워진 가슴을 잊지말

내 안에 자리잡은 벅찬 감정으로

다정하고도 기특하게 이번 한 주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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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21. 23:05

  오빠, 우리 처음 사랑은행에 왔던 거 기억나?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만난 우리. 그 어색함을 감당할 길이 없었잖아.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 그래서 오빠가 그랬잖아.

  “승혜 씨,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요. 하지만 저희 이제 두 번 만났는데 서로에 대한 마음이 너무 작은 건 당연한 거겠죠? 저도 그렇고 승혜 씨도…….”

  “, 저도 그렇지만 오빠도 나이가 좀 되잖아요. 지금까지는 오빠를 보면 편하고 나쁘지 않은 감정이 이는 건 사실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100% 인연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 행복한 사랑. 든든한 미래.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 그런 감정 쉽게 오는 게 아니잖아요.”

  “, 승혜 씨.”

  오빠는 일단 이런 여운을 남겼지. 그래서 난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랐어.

  그리고 며칠 후였지? 우리 회사가 있는 여의도로 점심 때 오빠가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나를 은행으로 끌고 갔었어. ‘사랑은행 여의도지점이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로.

  “은행이 점심 때 아니면 문을 닫잖아요. 그래서 지금 승혜 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오빠는 익숙한 솜씨로 번호표를 뽑았어. 하긴, 번호표를 뽑는데 익숙하고 덜 익숙하고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은행은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어. 우리가 뽑은 156. 앞으로 열 명이나 더 기다려야 하네. 난 운동을 많이 해서 실한 덩치를 소유한 오빠 어깨에 기대보았어. 이제 세 번 만난 남자였지만, 그래도 남에게 소개할 때는 내 남자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오빠의 어깨에. 그리고는 스르르 눈이 감겼어. 일이 많았는데 아직 점심도 먹기 전이라 좀 피곤했나봐. 오빠 어깨는 좀 따뜻했어. 사람이니까 온기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온기에 내 경계심도 어느 정도는 누그러지는 듯 했어.

  156번 고객님, 2번 창구로 오십시오.

  “승혜 씨.”

  우리 차례를 알리는 둔탁한 기계음과 내 귀에 작게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지. 정동호라는 이 남자. 나는, 아니 오빠랑 나는, 창구로 가서 앉았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오래 기다리셨죠?”

  근데 이 오빠 벌써 나랑 데이트비 통장을 만들려고 하나? 난 그래도 남자가 밥을 사면 차를 사는 정도의 매너는 갖고 있는 여잔데. 굳이 이런 거 귀찮게 왜 만들려고 하지?

  “, 자유마음적립적금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 고객님. 처음 오셨죠?”

  “.”

  “그럼 여기에 성함과 주민번호를 써주시고요, 성함 옆에 싸인 해주세요. 같이 오신 고객님도 써주세요.”

  나는 맛있는 브런치를 이 남자한테 대접받는 대신, 딱딱한 은행 텔러의 도움을 받아 은행업무를 보고 있었지.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 적금도 일반 적금이랑 똑같은 건 줄 알고 말야. 배는 고프지만 오빠가 날 먹을 거만 밝히는 식충이로 알까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있었어.

  난 익숙한 솜씨로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이름 석 자를 적고 멋들어진 사인을 했지. 오빠랑 내가 기재한 예금 원장을 텔러에게 내밀고는 잠깐 기다리고 있었어.

  “고객님, 먼저 입금할 마음 한 조각을 주세요.”

  텔러의 말을 듣고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 얘가 나랑 장난치나? 나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그래서 난 본능적으로 되물었나봐.

  “?”

  “마음이요, 마음.”

  오빠는 어느새 자기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서는 직원에게 내밀고 있었지.

  “, 승혜 씨도 머리카락 하나만 주세요. 제가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한데, 머리카락 한 올이면 충분한 마음이 입금될 거예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우리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후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까짓 머리카락 한 올이 대수랴, 는 생각에 내 가방에서 족집게를 하나 꺼내서 뒷머리카락을 하나 뽑았어. 난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이지만 아직 탈모가 오지 않았다는 데 안도하면서.

  “가입 다 되었습니다. 기간은 3, 이율은 10%고요. 중간 중간에 예쁜 마음, 고운 마음, 아끼는 마음 등을 자유로 입금하시면 만기가 될 때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돌아올 겁니다.”

 “.”

  오빠는 익숙한 듯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어.

  “, 기간이 되지 않았는데 해지는 되도록 하지 말아주세요. 저희가 혜택을 크게 드리는 만큼 중도 해지는 위험하니까요. 중도 해지하시면 생살을 도려내는 듯 아플 겁니다. 서로의 마음이요.”

  “,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 나는 오빠한테 물었어.

  “오빠. 왜 나한테 말도 없이 여길 왔어요? 아직 난 마음을 맡길 아무 준비도 안 되었는데.”

  좀 유치하지만 나는 뮤지컬에나 나올 대사를 오빠한테 읊어댔지. 이 남자, 과감함을 넘어 무모해보여서.

  그래, 사랑은행이란 거 나도 얼마전에 뉴스로 듣긴 했어. 사랑을 확신할 수 없는 커플이 마음을 맡기거나 적립시키면 만기가 지나서 이자가 붙는다는 걸. 이자와 원금을 포함하여 커다란 마음이 되어 죽고 못 사는 관계가 된다는 걸. 하지만 중도 해지하면 그 마음은 산산이 쪼개져 아파온다는 걸. 그 마음을 도저히 수습할 수 없다는 걸…….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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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14. 18:05

  새 직장으로 옮기고 일주일이 흘렀다. 난 출퇴근길에 읽을 책 두 권을 한 글자도 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달콤하고 허무한 황경신의 소설과 두루뭉수리한 듯 핵심을 찌르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은 가방 속에서만 뒹굴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 직장에 동대문시장 소속 상우회 회원으로 입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회사에 가입함과 동시에 나는 이 회사에 몰아치는 광풍과 왁자지껄한 소음을 온몸으로 맞이해야만 했다. 회사는 예수회 소속 수도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5일장만큼이나 북적거렸다.아직 채용계약서의 잉크도 뿌리지 않은, 이 회사에 투신하기를 주저하는 나를 온갖 행정, 막노동 잡부로 부리기 시작했다. 팀장과 그를 위시한 팀원들은 돌잔치를 끝나고 받는 돌떡처럼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아직 부끄러운 생각에 그 사람들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내 몸을 돌보기도 바쁜, 가정관리사를 거느리는 행위는 꿈도 못 꿀 연약한 소시민이니까. 나는 줄곧 이곳에서 이성을 잃고 매뉴얼과 자료를 보는 척하고 있었다. 또 흑색 수트를 입은 한 사내가 멀쩡한 내 정신 대신 내 몸뚱이를 활용하여 바쁜 선배들의 전화를 대신 받아주었다. 난 신입사원의 잡다한 프로그램을 한 번에 익힌 능숙한 주방보조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영진 님은 블라블라블라. 영진 님은 블라블라블라. ^^;;;;;;"

  깔깔깔 호호호 헤헤헤 흐흐흐 감사합니다 누구입니다, 하는 시끄러운 잡음들 속에 나는 시청 광장에서 이 팀 직원들을 앞에 놓고 발가벗겨지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이 곳에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잘못된 호출을 받고 모인 지원자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은 없는 행사의 지원자. 왜 난 항상 잘못된 곳에 홀로 방치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그래도 내 입꼬리는 항상 사람들을 향해 미소지어야만 했다. 너무 굳어있으면 아마추어 모델 같으니까.

  하지만 쇼는 통하지 않았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우물쭈물하는 열두 살 짜리 꼬마처럼, 나는 이 순간이 밥을 먹을 때인지, 이 순간이 화장실에 갈 때인지, 이 순간이 사수에게 어떤 말을 할 때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러야만 했다. 난 차라리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남자이고 싶었다. 그래도 그 남자는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받을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육년 간의 직장생활로 다져진 고도화된 눈치싸움 밖에 없었다. 허허거리고, 뛰어다니고, 말은 가려야만 하고, 이런 일이 똥 된장을 구분못하는 사람의 일과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여유없는 일상 속에, 나는 안톤 체홉이나 요한 세바스찬 바흐나 까르띠에 브레송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은 한 글자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야근과 주말근무가 일상화된 이 클리닉은 안 그래도 비루한 개인 생활을 저당잡힐 수밖에 없어서 괴롭지만, 난 나의 부족한 연봉을 도둑질 빼고 어떤 짓을 해서라도 메워야만 했다.

  낡은 앤티크처럼 지루한 명제. 왜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다는 말은 종일 내 릴 위를 맴돌고 있을까. 게다가 그 시작이라는 건 왜 유독 내게만 빨리 찾아오는 걸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래된 검정 가방을 흔들거리며 앤티크 같은 삼청동 아래를 내려가고 있었다. 길어진 밤은 종일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이 자리에서 저 자리를 비행하듯 자취를 그리고 있었다. 원 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그 자취는 계속 출근과 퇴근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선만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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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13. 14:47

  남쪽 숲속에 있는 연못은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하얀 꽃잎과 분홍 꽃잎이 함께 피어있는 연꽃도, 파란 이파리만 드러낸 개구리밥과 함께 연못 그 자리에 살고 있습니다. 잎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부레옥잠도 같이 살고 있지요. 이 친구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살랑살랑 부는 바람, 일렁이는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고 각자 자기 모양을 뽐내고 있습니다.

  “개굴, 개굴.”

  평화롭던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하던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퍼지게 된 거죠.

  연꽃이 개구리밥에게 말했습니다.

  “개구리밥아, 널 잡아먹는 개구리가 나타났어. 저번에도 왔었는데 이번에도 또 나타났네. 어떡하지?”

  “분홍 연꽃아.”

 개구리밥이 연꽃을 부르자 볼멘 소리로 연꽃이 대답했습니다.

  “나 이제 분홍 연꽃 아냐. 하얀 꽃잎도 있는 연꽃이라고.”

  연꽃의 말에 개구리밥은 좀 당황했지만 자기 이야기를 했지요.

  “알았어, 연꽃아. 개구리는 나 같은 풀을 안 먹는단다. 나방 같은 곤충을 잡아먹지. 처음엔 나도 내 이름이 개구리밥이라 개구리가 날 잡아먹는 줄 알고 얼마나 불안했는데. 하여간 내 이름을 지어준 인간들이 문제라니깐.”

  그 말은 맞았습니다. 개구리밥의 이야기대로 개구리는 배가 고팠는지 연신 개굴개굴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더니 혀를 낼름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연못 주위를 날아다니던 고동색 나방이 개구리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습니다. 개구리밥은 이파리를 들썩이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연꽃에게 말했습니다.

  “거봐, 맞지? 에헴.”

  연꽃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분홍꽃을 흔들거렸습니다. 개구리밥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시로요. 하지만 연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남쪽 숲에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던 그 때, 상한 비바람 때문에 강하게 흔들거리던 개구리밥 줄기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끊어져 둘이 된 개구리밥은 놀랍게도 죽지 않았답니다. 개구리밥은 갈라져 하나에서 둘이 되고 만 거죠. 그 일 이후 오히려 두 개구리밥은 더 건강해졌습니다. 햇볕도 잘 받고 크기도 적당해져서 날렵한 몸짓으로 물도 마셨죠.

  이렇게 더 날씬해진 개구리밥과는 반대로 부레옥잠은 이파리도 많아지고 몸집도 커졌습니다. 이파리 안에는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있었지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피가 켜서 연못 한 귀퉁이를 몽땅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부레옥잠이 빵빵한 이파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나도 개구리밥처럼 몸집이 너무 커져서 물도 그렇고 공기도 더 많이 먹어야 살지. 그런데 연못 옆에 사시는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양분을 드셔야 할까?”

  부레옥잠의 말이 울렸지만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미처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귀가 약해져서 듣기 어려운가 봐요. 결국 부레옥잠이 수양버들 할아버지께 직접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 누구냐? 아이고, 부레옥잠이구나.”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바람에 날리는 줄기를 거두지 못한 채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양분을 드셔야 하나요?”

  “, 글쎄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이파리나 줄기가 파릇파릇한 오십 년 전쯤에는 공기나 물을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데 부레옥잠아.”

  “, 할아버지.”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가늘지만 또렷한 말투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지도 팔십 년이 지났구나. 그동안 많은 연꽃이, 부레옥잠이, 개구리밥이 이 연못에서 살다가 죽었단다. 얼어죽기도 하고 풀을 먹는 동물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지. 어느 날 연못에 와서 물을 마시던 여우랑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단다.”

  “우와, 할아버지. 여우가 뭐예요?”

  “부레옥잠아, 여기 연못에는 연못에 사는 아이들이 있고, 연못 밖에 숲 속에는 숲 속에 사는 아이들이 따로 있단다. 여우도 숲 속에 사는 친구들 중 하나지. 목이 마른 아이들이 연못에 와서 물을 마시곤 한단다.”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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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13. 14:18

  어렸을 때부터 난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을 찢어 입으로 가져가 먹곤 했다. 그 나이때부터 종이 맛을 안 것은 아니었다. 기인열전에 나가고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 유아기의 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때 기억을 반추할 능력도 없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렇다. 그때부터 난 어쩌면 그냥 책을 눈으로만 보거나 입으로만 읽는 사람들과 달리 입으로 향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난 엄마한테 죽도록 얻어맞긴 했지만. 하여간 나 자신도 기억나지 않는 유아시절 나는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잡식성으로 아무 책이나 봤던 것은 아니고 특정 책만 유난히 몇 번이고 봤다고 한다. 이런 내 독서 습관이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하여간 난 그랬다고 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은 조용한 내 몇 안되는 든든한 친구였다. 내게는 다른 욕심은 없어도 책욕심은 가득하다. 겉과 속이 모두 예쁜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모조리 내 소유로 만들고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도서관이나 파주 출판단지, 한적한 커피숍 등은 여전한 나만의 공간이다. 아마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고 직장생활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더라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것일거다. 원래부터 내게 맞는 신발이 이거라는 생각 때문에. 난 꼭 맞는 신발을 신는 신데렐라나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는 아니지만 교회에 있을 때나 책을 볼 때, 글을 쓸 때 난 가장 편안하다. 행복까지는 지나친 감정일지 몰라도 편안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근데 왜 이런 얘길 하느냐고? 누군가 나에 대해 물을 때, 넌 왜 사니? 뭘 가장 좋아하니? 너에 대해 설명해보렴, 이런 류의 제안을 할 때 난 편안한 자리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거라서 말을 꺼내보았다. 누구나 삶의 좌표나 부표같은 것은 갖고 있을 테니까. 가난하다고 목적이나 목표가 없다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각쯤은 나도 늘 하고 산다고 말하고 싶었다.

  돈이 웬수라 일단 계속 직장에 몸담고는 있지만.

 

  (모바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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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5. 14:21

어떤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두려움이 많아져

누군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두려움이 많아져

도대체 왜 여기는 이다지도 어지럽지?

 

난 날카롭지도 않고 무디기만 하고

알아서 척척 못하고 더디기만 하고

나타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고

시끄러운 것에 염증을 느껴 조용히 있는걸

 

논리는 이제 지쳤어

책임은 내 소관이 아니야

그래, 다 알겠다고,

그런데 밥 한 번 먹기 왜 이렇게 힘든거람!

 

삐질삐질 땀 흘리던 계절을 지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계절에

태양은 이미 중천에 방긋 떠 있는데

난 아직도 세상이 부끄럽기만 해

 

그래도 이 길로 가야겠지?

못 먹어도 고라는 말도 있잖아

 

세상은 컨베이어 벨트 같은 거니까

가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으니까

쫓아오는 검은 사람들의 손길이 무서우니까

 

그러니까 난 가야겠어

쓰러지지 않으면 까무러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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