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앞에는 커다란 호수와 두툼한 눈밭
건너편에서 너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데
닿을 수 없는 우리 사이엔 더 이상 무엇도 닿지 않았다
운명은 우리를 거슬러 더 멀리 가라고 했다
눈물 같은 게 땅에 떨어졌지만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내 말은 바람소리 탓에 들리지 않았고
내 눈빛은 눈부신 햇살 탓에 옅어지고 있었다
전쟁 같은 세상 속에 서 있는 우리,
그 사이를 좁히려면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고비를 넘어야 할까
나는 너 있는 자리에 갈 수 있을까
그 자리에 너는 저기 저 나무처럼 언제까지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놓아지지 않는 네 손을 놓아버리고
운명은 내 눈을 멀게 하고
상황은 네 입을 막아버렸지만
그래도 기억은 자유로워
멀어지는 네 모습을 부단히 네 마음속에 담는다
네가 묻어있는 저기 저 나무와 호수, 갈매기에게 내 마음도 듬뿍 묻힌다
너와 내가 그들 속에서만이라도 함께하길 바라며
이제 나도 세상 속에 떠내려간다
너를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네가 없는 세상 속으로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2010년 홋카이도 토야 호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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