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봐, 여기 잘 왔지? 답답한 속 트이게 하는 건 바다가 최고라니까,' 하며 너는 말했다. 일요증보판 신문 같은 넉넉한 웃음은 덤이었다. 덕분에 나도 수채화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쉼 없이 활기찬 파도 속으로 내 못난 마음을 밀어넣기로 했다.

  좁아터진 마음, 시기심, 분노 등을 비단으로 곱게 포장하여 군청색 바다 속으로 발송했다.

  바다는 풍덩, 하며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우리 유치하지만 서로의 소원을 빛나는 바다 속에 풀어놓자.

  그래, 좋아.

 

  좀 더 온유해지자, 겸손해지자, 의연해지자고 생각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바다가 주는 맑은 공기를 하루 한 번 꼭 먹어야 하는 내복약처럼 모조리 털어넣었다.

  너도 나처럼 너의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 보며 계속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우리 서로 같은 소원이었길 빌어,' 하며 너는 말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너와 나는 한참을 백사장에 서 있었다.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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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에 비해 너무 많이 앞서간 무더위와, 무더위에 비례해 더 많이 앞서간 짜증과 피로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온유하지 못했고 참고 견디지 못했으며,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저 겨우 현실에 절충하며 교통신호 한 번 지키기도 힘든 운전자였다. 슬픈 눈을 갖고 있는 운전자. 불교 용어를 잠깐 빌리자면, 세상은 고(苦)의 연속이고, 그 고(苦) 속에 여러 겹의 인연을 도통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좀 슬펐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사진을 다시 보았다. 이 멋진 사진을 보며 이렇게 작은 미물이, 작은 생명이 그들의 이기심으로 툭닥툭닥거리는 세상, 따위로 시작하는 진부한 교훈이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난 애써 더 생각하지 않았다. 뻔한 레파토리는 지겨운 것. 게다가 그렇게 마음 넓은 척 해봤자 어차피 계속 좀생이 같은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별스럽지 않게 사진을 넘기려는 순간, 사진의 제목이 '꿈꾸는 하늘'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또 다시 멈칫했다. 단계를 나누기 어려운 아름다운 하늘 색깔과 함께 독특한 형체의 구름이 두둥실 떠 다니는 사진. 하늘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은 살짝 미소짓고 있으리라.

  꿈꾸는 하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에 찌든 내게 그런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확실한 오해가 있었다. 꿈은 나만 꾸는 줄 알았다. 아니다, 그게 정말 아니었다. 하늘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나같은 사람들 여럿이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하늘도 자기 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꿈에 나도 취해, 저 구름에 내 몸도 함께 실려 잠시만 두둥실.

 

 

(글-직접 작성, 사진-효돌양 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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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로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캄캄한 시야를 밝혀주는 건 작은 랜턴 하나 뿐이었다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알 수 없을 것 같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헤쳐간다

 

 

              *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내 식으로 인정하고

그도 나를 그 식으로 인정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조명은 꺼졌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 확고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그는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걷어내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알 수 없을 것 같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두렵지만, 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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