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쓴다 하면서도 게으름 때문에 글을 못 쓰고 있었다.

1.
안의 <실종일기> 감상문을 읽고 나도 <사채꾼 우시지마>의 감상문을 쓰고 싶었다. 인생의 밑바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만화랄까? <실종일기>와는 달리 내용도 그림체도 명랑하지 않다. 옴니버스 형식이라 매 권 중심인물이 바뀌는데 가끔은 감정이입도 쉽지 않다. 스스로 인생을 망치고 있는 인물들도 꽤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나약함조차도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쉽사리 부정할 수만은 없다. 사악하면서도 나약하고 비겁한 인물들의 개인적 과오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을 이용해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지옥, 그것이 이 만화가 그리는 세상이다. 그 지옥 끝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자는 먼저 절망부터 경험해야 한다.



2.
요즘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계기는 김대중의 <옥중서신>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과 독재 정권에 맞선 투쟁으로 상당 부분 채워져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의 서신의 반 이상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핍박을 겪으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께 의지하면서 뜻을 잃지 않았다. 사실 반독재 투쟁도 예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난으로 단련된 신앙이기에 비신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의 신앙은 진실되고 믿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종교적으로 배타적이지 않았다.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결혼 자체가 상당히 에큐메니컬한 것이었다. (DJ는 천주교도, 이희호 여사는 개신교도이다.) 그는 여러 교파를 초월해 함께 투쟁해나가기 위해 노력했으며, 현대의 과학을 인정했으며, 비신자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이명박 같은 이의 기독교는 얼마나 천박한가.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예수가 아니라 물신을 섬기는 것이며, 그들이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도덕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튼 이명박이 떨어뜨려놓은 나의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김대중이 다시 올려놓고 있다.

옥중서신. 1: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대중 (시대의창,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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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게 아니고, 그것이 이 책의 교훈도 아니다. 내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그러한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신앙 때문이었나 하는 점이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지 않으며 나란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매일 느끼고 있다. 자신의 이성과 의지만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누군가에 의지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조차 불완전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절대자에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신앙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마치 우리 학교 교훈처럼 말이다.) 내 안의 어둠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3.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란 책을 읽고 있다. 아직 반밖에 못 읽었지만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구절을 발견했다.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프란츠 M. 부케티츠 (열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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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신경 생물학 및 진화에 대한 연구, 생태학과 그 밖의 다른 (생물학) 분야에서 알려준 바에 따르면, 이른바 모든 정신 상태는 신경 프로세스들에 의존해 있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들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선택되고 안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신경 상태와 정신 상태를 '동일시하는' 것의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오래전에, 뇌(혹은 다른 기관)에서 정신(영혼 혹은 의지)의 "본거지"를 찾는 작업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는 게 판명 났다. (인간) 뇌의 섬세한 구조에 대한 그토록 상세한 지식조차도 우리가 그곳에서 생각이나 결정이나 욕망이나 기대나 기쁨이나 근심을 인식하게 해주지 못한다. 이것들은 뇌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특수한 특성이다. 정신 현상이란 뇌 '시스템의 특성'이라는 것이 요점인데, 이는 특정한 기관들(주족, 날개, 지느러미)의 특성이 운동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런 기관들에서 운동 자체를 찾아내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비유적인 의미로만 뇌가 의식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 뇌와 정신의 단일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125~126쪽)

내가 인지심리학 대학원에서 동료들과 가장 많이 다투었던 철학적 문제가 바로 저것이었다. 인지심리학도들이었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일원론자였다. (왜 당연한지는, 이쪽 분야 분위기를 보면 안다. 심리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하드 사이언스'를 추구한다.) 그러나 나는 일원론자이면서 환원주의자가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인간 정신은 뇌에서 발현된다는 걸 '알지만' 뇌 연구를 통해 인간 정신의 모든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뇌에 대한 물리적, 생리화학적 연구는 인간 정신의 비밀 중 일부분만을 밝혀줄 것이다. 뇌의 구조가 아닌 상태를 찍는 fMRI를 이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떠한 현상의 물리적 기반의 원리와 그 현상의 원리가 같다고 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계는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일원론자이면서 물리 현상과 정신 현상의 원리는 다를 수 있다는 이중론자이다.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 구절은 내 생각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다. 진화론에 대한 강한 긍정과 환원론에 대한 부정이 함께 담겨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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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다 좀 길게 쓰고 싶었는데 그냥 짧게 써서 올린다. 글 쓰는 데 너무 부담 갖다 보니 오히려 못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다. 다음엔 아마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읽은 것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