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나라'라는 말이 있다. 유명인이 쓰면 나라 욕 먹인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말이다.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 이유는? 자신은 낮출 수 있어도 자신보다 크고 말을 듣는 상대방보다도 큰 존재를 낮출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 '저희 학교', '저희 회사'같은 말은 잘도 쓰지 않는가? '저희 고고조할아버지'도 되지 않는가?

  나라 사이에는 위아래가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나라만 위아래가 없나? 신분제가 철폐된 사회에선 가문 사이에도 위아래가 없다. 근데 왜 '저희 증조부'같은 말에 시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까? '저희나라'란 말을 들을 때마다 게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국어학적인 설명을 동원해봤자 그 설명들은 국어학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나라가 자신의 자존심과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기 싫어서, 어떻게든 설명을 갖다붙이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저희나라'란 표현이 일반적으로 틀린 표현인 것은 맞다. 그건 사실 나라 사이엔 위아래가 없다거나, 자신보다 큰 존재는 낮출 수 없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집'을 써야할 때 '저희집'을 쓰는 실수 같은 것이다. 우린 엄마한테 얘기하면서 '저희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집'이라고 하지. 말하는 '나'와 듣는 '엄마'가 모드 '우리집'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한테 얘기할 때는 '저희집'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우리집'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럴 때 '우리집'이라고 하면 조금 무례하게 들릴 것이다.

  한국어는, 최근에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고 해도, 거의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이다. 우리가 한국어로 '우리나라' 또는 '저희나라'라고 말할 때, 듣는 이도 한국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저희나라'라고 말하게 되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모두 낮추는, 사실은 겸양 표현이 아닌, 웃기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저희나라'는 틀렸고 '우리나라'가 맞다.

  하지만 '저희나라'도 쓸 수 있다. 듣는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이고 말하는 이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 노교수와 얘기하게 된다면, 나는 '우리나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저희나라'라고 말하지. '저희나라'도 우리나라 말이다. 우리말 문법이나 화법에 비춰볼 때 전혀 틀린 말이 아닌데 왜 쓰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쁜가?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다면 차라리 '한국'이라고 말하자.

  난 외국인 노교수 앞에서 '우리나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마치 '제가'가 아니라 '내가'라고 하는 것처럼 내 신경을 거스른다. 그리고 내 신경은 '국가와 자존심'보다는 '개인간 예의'에 더 닿아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3.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