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나라를 고르라면 북한과 미국이 꼽힐 것이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태도는 좋지 않지만 굳이 두 나라에 대한 태도를 둘로 나눈다면 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2 곱하기 2, 두 나라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정치적 성향을 나눈다면 친북친미, 친북반미, 반북친미, 반북반미,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두 나라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이거나,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유익한 기준이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 기준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것은 황금률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 그중에는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도 포함된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등 여러 가지 보편적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뭉뚱그려 모두 황금률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이나 북한이나 낙제점이다. 미국은 비록 국내에선 비교적 이 기준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외에선 어느 나라보다도 이 기준을 많이 어기고 있다. 대인지뢰금지협약(http://100.naver.com/100.nhn?docid=775619)을 비롯해 각종 범인류적으로 필요한 협약들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로 건국된 국가이며, 남미 및 후진국을 착취해가며 성장한 나라이다. 민주주의 가치의 전파에 공헌한 바가 없지는 않지만 범세계적으로 봐선 부정적 영향이 너무나 컸던 나라이다.
  북한은 어떤가? 겉보기에 이상적인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자주적인 국가를 설립했다. 친일파를 숙청하고 토지 개혁으로 핍박받던 농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3년도 지나지 않아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념 수호를 명분으로 수많은 정치지도자를 숙청했다. 그후에는 사회주의 이념도 썩어문드러져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공산주의 국가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듯이 잘먹고 잘사는 지도층과 굶고 헐벗는 대다수 인민들로 나누어졌다. 그리고는 자유를 갈구하는 인민들의 인권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 기준, 이상에 근거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친북친미이다.

  하지만 정치와 외교가 항상 보편적 기준, 이상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남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세계 10대 무역국이라고는 하나 군사적, 외교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에는 주위에 강한 국가들이 너무 많다. 따라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보다는 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과 연대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설사 미국에 적극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진정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용미'가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 것이며, 굳이 이를 친미와 반미 중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면 친미가 될 것이다.
  북한은 어떤가?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도 남한의 이익과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평화를 위해서도 북한과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북한의 현 정권을 인정하고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진적 개방을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이상적으로나 가장 적절한 방안이다. 지금 북한을 비난한다면 북한은 더더욱 문을 닫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북한 인민의 생활 개선은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개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북한과의 협력'이며, 이를 친북과 반북 중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면 친북이 될 것이다.

  자, 이상과 현실에 따라 판단해 보았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반북반미거나 친북친미였다.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적일 수 있는 재야세력은 반북반미가,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세력은 친북친미가 주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근데 어쩐 일인가? 이 나라엔 오히려 반북친미와 친북반미가 넘치고 있다.

  반북친미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는 사실 단순하다. 북한은 독재국가, 미국은 민주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남한의 적국은 북한이었고, 동맹국은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지만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이해하기도 쉽다. 이에 대한 반박은 있을 수 있다. 북한은 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차치하고 본다면 반북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태도가 낳을 부작용이 걱정이다. 반북친미적인 입장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반북은 북한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어 북한 인민의 생활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지나친 친미적 태도로 인해 실제 미국이 저질렀거나 저지르고 있는 악행들조차도 덮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반북친미는 상당히 유아적이고 근시안적인 태도이다.

  그렇다면 친북반미는 어떤가? 솔직히 이런 태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정신적으로 매우 뒤틀려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악행이 아무리 크다 해도 미국만 반대하고 북한만 편들기에는 북한의 악행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미국은 자국민을 이렇게 학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남한의 지도자들도 역시 같은 민족이다. 친북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은 남한의 지도자들에 대해선 극히 비판적이면서 북한의 지도자들에게는 매우 관대한 잣대를 갖다댄다. 이는 이중잣대가 아닌가? 가끔 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닌가하는 아이러니한 생각도 드는데, 왜냐면 미국에 가장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지고의 정신적 사랑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더 도덕적이길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보다는 가까운 대상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더 비판적일 수 있다는 것이 맞는 해석일 것 같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남한 정부, 그 다음인 미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를 들면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한 태도를 비교할 수 있다. 친북반미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이승만에 대해선 극도로 비판적이지만 김일성에 대해선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다. 하지만 둘 다 독립운동가였고 독재자였다. 둘 모두 공과를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승만과 김일성을 미국과 북한으로 바꿔 놓아도 마찬가지이다. 친북반미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역사적 문제를 다루든 드러나는 이중잣대이다.

  나는 북한과 미국에 대한 논쟁이 친북친미와 반북반미의 논쟁이 되길 바란다. 그 논쟁이 합리적인 토론으로 발전된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조화지점을 찾는 유익한 논의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은 반북친미와 친북반미의 논쟁이다. 이 두 입장은 모두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는데다, 양측 모두 상당히 교조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발전적인 논의는 요원해보인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점은 이들의 힘싸움 때문에 합리적인 친북친미, 반북반미 세력이 잊혀질 것 같다는 점이다.
  남한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힘있는 친북친미주의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집권 기간 중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친북친미정책을 추진했고, 미 클린턴 집권 시절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이가 노무현이었는데 그는 실질적으로 친북친미 정책을 추진했으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친북반미로 오해를 살 만한 일이 많아 그 효과가 반감되었다. 이제 둘 다 세상을 떠난 지금 정치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친북친미 정책을 주도적으로 펴나갈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인 진보세력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진보세력 중에 그런 세력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회의가 깊다. 상당수의 진보세력은 친북친미라기보다는 친북반미에 가깝다.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가끔 그들의 이중잣대는 짜증날 정도다. 상당히 유명한 책인 <대한민국사>(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권을 보자.

두 형제가 있었다. 한 쪽은 체면에 구애받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다. 다른 한 쪽은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당연히 전자는 남한, 후자는 북한이다. 북한을 마치 절개 높은 선비가 벼슬에 나가지 않아 고난을 감내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좋게 보아줘도 북한을 그냥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해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산 나라로 보아줄 수 있는가? 이 책에는 저런 식의 표현이 비일비재한데 이중잣대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중권, 우석훈 등 진보주의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지만 <대한민국사>를 읽고서는 상당한 불쾌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진보의 대표로 여겨지고 있으며, 반북친미 세력만큼이나 친북친미가 설 자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6.15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나는 적어도 죽기 전에는 통일이 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전에 우선 꼴통 반북친미주의자와 교조적 친북반미주의자들이 힘을 잃고, 현실과 이상의 합리적 조화를 논하는 세상이 와야 할 것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7. 02:2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