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장면이야.”

  이 문장은 매우 독특하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자장면”이 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위 문장이 쓰이는 경우 그 뜻은 “난 자장면이 좋아.”나 “난 자장면으로 할래.”이다. “난 소주.”, “난 커피 말고 녹차.”같은 문장도 그렇다. 고종석 씨는 그의 책『국어의 풍경들』에서 이런 식으로 표면적 비논리성을 띄는 문장들을 ‘자장면 문장’이란 이름으로 묶어 지칭했다. 일본어에서는 이러한 문장을 ‘장어(うなぎ) 문장’이라고 한다. 장어를 시킬 때 “나는 장어다(ぼくはうなぎだ).”라고들 하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이고 흔한 쓰임이 무리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국어의 풍경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고종석 (문학과지성사, 1999년)
상세보기

  그런데 ‘자장면’은 표준어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대표이기도 하다. 맨 위의 문장을 ‘문자 그대로’ 보면 논리적으로 틀리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틀렸다. ‘나=자장면’일 수도 없지만 ‘내가 먹으려는 것=자장면’일 수도 없다. 우리가 먹는 것은 ‘짜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장면’을 시키는 사람이나 ‘자장면’이라고 쓰인 메뉴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장면’은 오직 방송에서만 쓰이는 죽은 말이다. 아마 아나운서들도 주문할 때는 ‘짜장면’이라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장면’ 표기에 불만을 품고 오래 전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표준어란 이토록 뻣뻣한 것일까? 문교부의 1998년 1월 19일 고시에 따르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이 총칙에 비춰 보면 ‘짜장면’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니 충분히 표준어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고쳐질 수 있을 것이다.

  표준어의 진짜 문제는 총칙을 준수하고도 고칠 수 있는 ‘자장면’ 같은 낱말에 있는 게 아니다. 총칙에 드러나 있는 편협함, ‘교양 있는’ ‘서울말’이 문제다.

  방언은 의사소통의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언어를 풍부하게 해주는 구실도 한다. 특히 방언 어휘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보고이다. 지역 방언은 해당 지역의 삶의 결을 보여준다. ‘정지’는 ‘부엌’의 사투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정지’라고 말할 때의 가옥 구조는 ‘부엌’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농촌, 어촌, 산촌에는 각각 농업, 어업, 임업과 관련된 수많은 방언 어휘들이 존재한다. 그 방언 어휘들을 서울말에 대응시키면, 마치 ‘벼, 쌀, 밥, 메’를 ‘rice’에 대응시킬 때처럼 차이가 뭉개져버린다. 이런 수많은 말들이 단지 ‘교양 있는 서울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송과 사전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전 국립국어원장이었던 이상규 선생은 『둥지 밖의 언어』에서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언어의 다양성이 생겨나는 과정이나 그것을 유지하는 힘은 편협한 언어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157ㅉ)고 말하고 있다.

이상규: 둥지 밖의 언어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이상규 (생각의나무, 2008년)
상세보기

  한국어가 공용어 화자수로 세계 14위이긴 하지만 영어에 비하면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공룡 언어들에 치여 많은 소수 언어들이 소멸하거나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 한국어도 그런 처지에 처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거대 언어의 파고 속에서 소수 언어들이 자신을 지키는 명분은 다양성의 유지이다. 생태계의 다양성만큼이나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언어야말로 일차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문화 유산이다. 문화 변방국으로서 문화 다양성의 보존을 외쳐야 할 처지의 한국이 도리어 문화 다양성을 파괴하는 언어 정책을 취한다면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어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의 표준어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

  매체의 발달로 이미 전국에서 표준어가 쓰이고 있는 지금 굳이 표준어를 서울말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교양 있는’이란 모호한 수식도 없애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영역 이외에서 표준어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표준어만 써야할 필요는 없다. 방언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방송이나 신문에서 그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다면 지역 주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의 지역 언론에 대한 애착도 강해질 것이다. 사전편찬자들도 그 동안 외면했던 지역 방언과 사회 방언의 어휘들도 사전에 싣기 시작할 것이며, 그러면서 그 문화들이 보존됨은 물론, 주류 문화와의 소통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가 한국어의 규범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장면’같은 단어를 쓰며 강박적으로 표준어에 집착하는 방송에서도 부정확한 표현이나 잘못된 표기가 남발되고 있다. 언어 규범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표준어와는 별개로 이루어져야 하며, 엄밀히 말해 이는 표준어보다는 맞춤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맞춤법에 대해서는 후에 다른 글에서 논하게 될 것이다.

  언어 다양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졌던 분이 국립국어원장을 지냈는데도 언어 정책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한 개인보다는 기관이, 일개 기관보다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정부의 힘이 더 셌던 것일까? 아예 표준어를 없애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10. 20:4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