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숲속에 있는 연못은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하얀 꽃잎과 분홍 꽃잎이 함께 피어있는 연꽃도, 파란 이파리만 드러낸 개구리밥과 함께 연못 그 자리에 살고 있습니다. 잎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부레옥잠도 같이 살고 있지요. 이 친구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살랑살랑 부는 바람, 일렁이는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고 각자 자기 모양을 뽐내고 있습니다.

  “개굴, 개굴.”

  평화롭던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하던 연못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퍼지게 된 거죠.

  연꽃이 개구리밥에게 말했습니다.

  “개구리밥아, 널 잡아먹는 개구리가 나타났어. 저번에도 왔었는데 이번에도 또 나타났네. 어떡하지?”

  “분홍 연꽃아.”

 개구리밥이 연꽃을 부르자 볼멘 소리로 연꽃이 대답했습니다.

  “나 이제 분홍 연꽃 아냐. 하얀 꽃잎도 있는 연꽃이라고.”

  연꽃의 말에 개구리밥은 좀 당황했지만 자기 이야기를 했지요.

  “알았어, 연꽃아. 개구리는 나 같은 풀을 안 먹는단다. 나방 같은 곤충을 잡아먹지. 처음엔 나도 내 이름이 개구리밥이라 개구리가 날 잡아먹는 줄 알고 얼마나 불안했는데. 하여간 내 이름을 지어준 인간들이 문제라니깐.”

  그 말은 맞았습니다. 개구리밥의 이야기대로 개구리는 배가 고팠는지 연신 개굴개굴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더니 혀를 낼름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연못 주위를 날아다니던 고동색 나방이 개구리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습니다. 개구리밥은 이파리를 들썩이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연꽃에게 말했습니다.

  “거봐, 맞지? 에헴.”

  연꽃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분홍꽃을 흔들거렸습니다. 개구리밥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시로요. 하지만 연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남쪽 숲에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던 그 때, 상한 비바람 때문에 강하게 흔들거리던 개구리밥 줄기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끊어져 둘이 된 개구리밥은 놀랍게도 죽지 않았답니다. 개구리밥은 갈라져 하나에서 둘이 되고 만 거죠. 그 일 이후 오히려 두 개구리밥은 더 건강해졌습니다. 햇볕도 잘 받고 크기도 적당해져서 날렵한 몸짓으로 물도 마셨죠.

  이렇게 더 날씬해진 개구리밥과는 반대로 부레옥잠은 이파리도 많아지고 몸집도 커졌습니다. 이파리 안에는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있었지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피가 켜서 연못 한 귀퉁이를 몽땅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부레옥잠이 빵빵한 이파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나도 개구리밥처럼 몸집이 너무 커져서 물도 그렇고 공기도 더 많이 먹어야 살지. 그런데 연못 옆에 사시는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양분을 드셔야 할까?”

  부레옥잠의 말이 울렸지만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미처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귀가 약해져서 듣기 어려운가 봐요. 결국 부레옥잠이 수양버들 할아버지께 직접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 누구냐? 아이고, 부레옥잠이구나.”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바람에 날리는 줄기를 거두지 못한 채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양분을 드셔야 하나요?”

  “, 글쎄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이파리나 줄기가 파릇파릇한 오십 년 전쯤에는 공기나 물을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데 부레옥잠아.”

  “, 할아버지.”

  수양버들 할아버지는 가늘지만 또렷한 말투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지도 팔십 년이 지났구나. 그동안 많은 연꽃이, 부레옥잠이, 개구리밥이 이 연못에서 살다가 죽었단다. 얼어죽기도 하고 풀을 먹는 동물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지. 어느 날 연못에 와서 물을 마시던 여우랑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단다.”

  “우와, 할아버지. 여우가 뭐예요?”

  “부레옥잠아, 여기 연못에는 연못에 사는 아이들이 있고, 연못 밖에 숲 속에는 숲 속에 사는 아이들이 따로 있단다. 여우도 숲 속에 사는 친구들 중 하나지. 목이 마른 아이들이 연못에 와서 물을 마시곤 한단다.”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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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감자-동화는 내 친구 21(강진순 외 글)』. 내가 지원했다가 탈락했던 동화 공모전. 심사평은 이랬다. '이야기를 보여주느냐, 들려주느냐에 따라 작가의 역량이 결정된다. 중요한 사건을 대화체로 설명하거나 일기장의 내용으로 대체하는 안일한 상황 전개는 좋지 않다. 또 어디서 본 듯한 제재는 좋지 않다. 동화 습작을 많이 해 보아야 하며, 동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많이 드러나야 한다.'

  글쟁이의 꿈. 어느 순간 가까워진 듯 하다가 잠에서 깨면 멀어지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등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가도 어느 날은 '나 같이 쓸모 없는 인간은'하며 자학하곤 한다. 결국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시간은 자꾸 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금방 마르는 우물같은 내 머릿속은 어떡해야 하나. 나란 인간은 틈만 나면 몸과 마음이 아파서 큰일이다.

 

 

  『이렇게나 똑똑한 식물이라니(김순한 글)』. 식물에 대한 동화 습작을 해보았지만, 이런 기초적인 지식이 없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아이의 입장에서 해소시켜주고 있지만 식물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나같은 어른에게도 효과적인 책이다. 총천연색 삽화는 어두운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 특히 난 식물에게서 인내심을 본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난 감히, 너무나도 쉽게 영원을 말하고, 사랑을 말한다. 끈기를 말하고, 10년 후를 말한다.

 

 

  그리고, 좀 아팠다. 휴가가 끝나고 사무실에 오는 일이 싫었던 것일까. 뭘 먹기만 해도 위장은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몸의 무거운 느낌이 나를 온종일 괴롭혔다. 몸이든 마음이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나는 정말 태생이 수양버들 같다. 외부 충격이든 내부 충격이든 조그만 흔들림에도 심하게 흔들려버리는 수양버들. 때로 난 내가 세상 속에서 내 스케줄을 주도하기보다는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내가 겨우 흐름을 좇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난 좌절이나 포기라는 것을 할 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 사내다. 내가 뭘 했다고, 지금껏 나는 배의 방향을 조금씩 잔잔한 바다로 돌리는데 전력을 다했을 뿐이다. 포기나 좌절 같은 그런 가치는 뭔가 치열하게 세상 속에서 분투하고 피를 흘려 쓰러질 정도나 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난 어떻게든 나아가고 또 나아가서 먹고 살 길을, 행복할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하지만 조금 정직하게 말한다면 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다. 이렇게 나는 세상 속에서 오늘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미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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