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버지께 또 쪼이었다. 왜 늦게 들어 왔느냐, 왜 너의 명줄과 돈은 상관 관계가 없느냐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 분의 레파토리는 구성지다 못해 한이 맺힌 절규라 일컬어지는 판소리와도 쌍벽을 이룰만 하다. 그대는 날 성가시게 한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러 이름만큼이나 저속한 서비스를 자랑하는 고속터미널에 가기 위해 아버지와 지하철을 던지듯 합승하였다. 개통한 지 며칠 안되는 6호선 안에서 몇 없는 사람을 향해 추파를 던지듯 대화를 나누었다.
  '너, 그렇게 살 빼는 것도 좋지만 몸 생각해서 천천히 해야 되는 거야. 그렇게 무리해서 욕심부리면 네 몸 축난다.'
  '아빠, 아빠는 세상을 모두 아는 분 같아요.'
  7호선 태릉 입구역에서 환승하며 나는 진리를 불쑥 내밀었다.
  '하하, 뭐 내가 안 해본 일 있나? 옛날에는 말이지….'
  또 아버지의 꼬장꼬장한 무용담이 펼쳐질 것을 예지하며 난 귀를 막는 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웅성대는 사람들의 틈에서 조용히 경청하였다. 아버지.. 그 이름 만으로 미소녀들을 흥분시키진 못하지만 아직 그 단어가 어버이날에만 살아 있는 사어(死語)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한 끝에 '마침내'(사실 태릉 입구 - 고속터미널은 역이 굉장히 많다)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또 군말 없이 달구지의 소처럼 어버지의 자가용, 리어카를 짊어지고 싶지만 끌고 둘이 부지런히 쓰레기통에서 주워 모은 알토란 같은 우리 사랑 쓰레기들을 실어야만 했다. 평소에는 상관 없지만, 리어카가 만차되었을 때는 그것을 끌 때 '조혜련의 다이어트 댄스'를 보거나 따라하는 일만큼 싫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비웃는 듯한 표정들은 나를 환멸에 빠지게 했다. 이렇게 일만큼은 고되지만 그 외적인 분야(?)에서는 거의 프리패스 수준이었다. 즉, 나는 공짜로 가게에서 우유를 먹거나 자정면 집에서 자장면도 먹으면서 크림 소스를 바른 와플까지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었다.

  '여기서 자장면 먹고 가.'
  '아빠는 안 드시게요?'
  '난 너 먹는 것만 보면 배불러.'
  '여름방학 다이어트 프로젝트'도 무색해진 듯. 난 자장의 유혹에 자장 법사와 달리 넘어가 버렸다. 하루 쯤은 괜찮겠지, 운동하면 될거야, 리어카도 끌었는데, 하는 식의 위로 섞인 핑계로 자기 위무를 하고 말았다. 배고플 때 자장면 한 줄기를 무색케하는 한 그릇을 설거지하기 편하도록 배려해 드렸다. 난 청소하러 또 다시 떠나신 아버지를 찾았다. 자장면 덕에 조금 둔해진 내 몸을 이끌고 아빠, 하고 불렀다. 그 때 보이는 건 저 앙상한 골격. 요즘 팔, 다리 많이 주물러 드렸는데……. 청소복을 입은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 비어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앙상한 부끄러움이 전류를 타듯 내 온 몸에 흘러 내렸다. 왜 이리 슬프고 눈물이 나오던지.
  '이제 가, 11신데 막차 놓칠라.'
  '네.'
  차마 내 몸이 힘들어서 '더 도와드리고 싶어요,'라는 인사성의 발언을 할 수 없었다. 장위동으로 오는 지하철. 돌곶이에서, 나는 아버지의 앙상한 골격을 보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앙상한 부끄러움 때문에. 사실 유치한 두려움이 앞섰다. 내일이라도 그 분이 이상해질까봐, 한없이 기도하고 싶다. 기도하다가 차라리 내가 이상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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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6.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