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먹고 - 달리 말하면 욕먹을 각오를 하고 -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아니, 말하기 껄끄럽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아니, 이런 치졸한 얘기까지 공공의 장소인 이곳에서 하면 난 이상한 사람일 거다.

  이런 말 하는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다.

  틈틈이 성경읽고 예배드리는 생활만 하고 있기 때문에 말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거라도 이곳을 통해 한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지금껏 참아왔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왜 에쿠스로 바꿔야만 했는가.

  왜 래미안으로 이사해야만 했는가.

  왜 교회 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해야만 했는가.

  왜 전도 외 예배나 기도나 찬양이나 감사나 참된 교제나 교육이나

  기존 성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경시하는 것만 같은가.

  왜 매주 설교에서 전도'만' 이야기하는가.

  왜 그렇게 오직 전도'만을' 강요하고만 있는가.

  왜 전도한 비율에 비해 신자의 수가 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당사자를 욕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진짜 욕이라면 당사자를 바라보면서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나는 용기와 의지가 박약하다. 이것은 집에 사는 잡벌레가 죽을때 몸통이 터지면서 내는 찍소리와 유사하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올바르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나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니까. 오히려 내가 이런 말을 여기서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간의 설교 말씀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모든 면이 맘에 안 드는 일 투성이라면 내가 그 곳을 빠져도 벌써 빠지지 않았을까. 고무적인 것은 예전 설교에서는 성공학, 부자학, 행복학 개론 같은 이야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오로지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기복신앙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거 해주셨으니까 저도 열심히 할게요,' 하고 그분과 균형을 맞추려고 게임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섬겼으니 무엇을 해 주세요,' 라는 딜(deal)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분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꿈꾸고 그분 안에서 선하게 살고 싶은 것 뿐이지.

  중요한 것은 여긴 동네에서 평생 다닌 교회이기 때문에 - 교회의 방향이 어떻든 - 난 이 교회에 정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중심 메시지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이단적으로 빠지지 않았고,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방향이 어떻든 나는 나름의 신앙생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굴 탓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2.

나는 너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어
진심을 원했어
마지막으로 널 봤던 날도 널 원하지 않았어
진심을 원했어

- 어반자카파, '니가 싫어'

 

 

그래요,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님처럼 개선장군이 되어도

정작 한 사람의 진심은 얻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마음을 갈구해도

당신의 진심은 이 지구상에 없을 지도 몰라요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내 상태에서

막상 수혈받아야 할 피는 어쩌면 한 사람의 진심일지도 모르는데

그 진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내가 마음밭에 세운 주춧돌은 가루가 되어버리고

당신을 향해 힘차게 걷다 헛디뎌 꽈당 넘어지고

당신을 알아갈수록 점점 두려움만 많아지고

그렇게 난 손 끝에서 당신의 껍데기만을 자위하는걸

 

(이건 마치, 마음의 실타래가 엉켜버릴대로 엉켜버렸는데

일부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풀 수 없는데

실타래 전체를 버릴 수도 없고 끊어버리자니 아프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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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란 대략 이렇다. 주위를 둘러보기 힘든 상황에,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머릿속에 과부하가 생겨버리는 상황.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떤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게 되고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나아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한껏 꼬여버린 실타래, 아니 이어폰 줄 같은 마음의 실마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때로 난 개선문을 위엄 있게 들어서는 장군 같지만 지금은 흥신소 사람에게 계속 쫓기는 빚쟁이 같은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계속 보게 된다. 책에 대한 감상을 올리지 않은 것은 그런 것을 올릴 겨를이 없었고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책들이 결코 함량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난 확실한 책만 잡으니까. (확실하지 않다면 내가 아마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몰랐겠지) 2주에 한번씩 꼬박꼬박 두 곳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고, 불규칙적으로 온라인 책 사이트나 오프라인 서점을 활용해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또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로는 이북(e-book)도 샀다. 책을 집으면 보물을 손에 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예쁜 그림과 귀여운 내용이 담긴 동화를 보고 있는 느낌은 정말 소중한 보석을 잡은 것 같은 느낌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책을 시간을 쪼개어 보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창작의 시발점이 되지 못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 써야겠다는 생각은 충만한데 소재거리나 이를 힘 있게 끌고 나갈 스토리라인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내가 처음 습작을 시작할 때부터 대두된 문제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난 참고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보고, 생각도 많이 해보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마음을 잡고 이를 글로 옮겨보면 이것은 글에 전혀 재능이 없는 초등학생이 설레는 마음에 밤늦게 쓴 글과 비슷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다음날 깨어나 그 글을 보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많은 상을 휩쓴 작가의 글을 보면(실제 대부분의 책이 이렇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질투와 부러움이 혼재된 마음을 갖게 된다. 실력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꾸준한 습작과 이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실력을 보여줄 습작의 산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내 삶 속에 설레는 일이나, 기쁜 일, 보람 있는 일, 이런 것들이 삶에 정촉매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어둠, 우울함 등의 정서와 가까워진다면 즐거워 죽겠는 아이들을 표현할 수 없다. 아이들의 신나는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낼 수 없다. 답은 쉽다. 내가 일이나 아르바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처럼 글 쓰는 행위도 매일 시간을 정해서 조금씩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함량이 매우 떨어지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연습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약속을 내 마음판에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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