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우리가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우리는 무엇을 얻을 때마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게 돼. 나는 그걸 알고 있어. 더 슬픈 것은, 무엇을 얻고자 할 때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무엇과, 앞으로 잃게 될 무엇을 다 알고 있다는 거야. 하지만 무엇을 얻었을 때, 자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 정말 몰라. 완전하게 잃어버렸기 때문에, 짐작도 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잃어버린 그것은 우주 저 밖으로 던져지고, 아무도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아. 혹시 나를 진심으로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해주어도, 나는 그걸 기억해낼 수 없을 거야. 그건 정말 완벽한 상실이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는 없잖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사람들은 그렇게 잃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끝내겠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정말 그것을 얻었을 때 악마는 영혼을 가져가지.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인생이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 쪽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텅 빈 영혼을 지키며 사는 일일까? (하략)

 

 - 『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2003, 소담, pp.61~62.

 

 

# (전략) 열두 살 때부터 우리는 따로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난 다음에도 비는 우리 집에 잘 오려고 하질 않았다. 나로서도 여자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었고, 비도 항상 또래의 남자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해 가을에, 나는 아주 많이 아팠다. 엄마는 내 머리 위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놓고 걱정 어린 눈으로 하루종일 나를 보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온몸은 뜨거웠다. 아득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몹시 서러웠고, 그래서 줄곧 울었다. 사흘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앓았다.

  사흘째 저녁, 어렴풋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나는 비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비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내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겠어."

  무언가 따뜻한 솜털 같은 것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나는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었고,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 같은 책, pp.79~80.

 

 

#  (전략) "남자 때문에 대학 가냐?"

  하하, 그건 아니지, 내가 말하려는데, "나랑 같은 대학 가자."하고 비가 먼저 말했다.

  "같이 다니자. 이 도시를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너하고 나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자, 약속."

  비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여긴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 나는 힘없이 비의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비의 손가락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내 앞에는 단단하고 따뜻한 미래가 있고, 거기엔 당연히 비가 있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믿기 시작했던 건, 그 때부터였다.

 

 - 같은 책, pp.107.

 

 

 

 

  내가 이래서 황경신 편집장님이 좋다. '세면대 위에 달려 있는 조그만 거울 속에서, 한없이 평범하고 한없이 바보 같은 여자 하나가 울고 있다,'는 문장이랄지, '너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고 누구를 사랑하고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어떤 일로 즐거울까. 나 없이 너는 어떻게 행복할까……,' 같은 문장은 어떻게 나온 것이며 어떻게 쓰는 걸까. 한 마디로, A급 횟감용 생선처럼 문장이 파릇파릇하게 살아있다. 사람과 사랑할 때의 아련한 각 지점이 구체적으로 활짝 피어나는 이런 문장들. 이런 문장들을 보면 가슴이 막 뛴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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