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난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을 찢어 입으로 가져가 먹곤 했다. 그 나이때부터 종이 맛을 안 것은 아니었다. 기인열전에 나가고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 유아기의 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때 기억을 반추할 능력도 없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렇다. 그때부터 난 어쩌면 그냥 책을 눈으로만 보거나 입으로만 읽는 사람들과 달리 입으로 향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난 엄마한테 죽도록 얻어맞긴 했지만. 하여간 나 자신도 기억나지 않는 유아시절 나는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잡식성으로 아무 책이나 봤던 것은 아니고 특정 책만 유난히 몇 번이고 봤다고 한다. 이런 내 독서 습관이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하여간 난 그랬다고 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은 조용한 내 몇 안되는 든든한 친구였다. 내게는 다른 욕심은 없어도 책욕심은 가득하다. 겉과 속이 모두 예쁜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모조리 내 소유로 만들고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도서관이나 파주 출판단지, 한적한 커피숍 등은 여전한 나만의 공간이다. 아마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고 직장생활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더라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것일거다. 원래부터 내게 맞는 신발이 이거라는 생각 때문에. 난 꼭 맞는 신발을 신는 신데렐라나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는 아니지만 교회에 있을 때나 책을 볼 때, 글을 쓸 때 난 가장 편안하다. 행복까지는 지나친 감정일지 몰라도 편안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근데 왜 이런 얘길 하느냐고? 누군가 나에 대해 물을 때, 넌 왜 사니? 뭘 가장 좋아하니? 너에 대해 설명해보렴, 이런 류의 제안을 할 때 난 편안한 자리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거라서 말을 꺼내보았다. 누구나 삶의 좌표나 부표같은 것은 갖고 있을 테니까. 가난하다고 목적이나 목표가 없다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각쯤은 나도 늘 하고 산다고 말하고 싶었다.

  돈이 웬수라 일단 계속 직장에 몸담고는 있지만.

 

  (모바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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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앉은 체코 체스키크르믈르브는 말이 없었다

이십대 나는 내 좌표를 잃어버렸고 도망치듯 한국땅을 내 버렸다

 

 

내 안에 산적한 문제가 절로 눈 녹듯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은 착각이었다

저기 저 녹지 않은 눈처럼 내 마음에서 날 괴롭히는 문제는 녹지 않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못살게 했다

상황은 사람은 여건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력한 나에 대한 절감 끝에 상황 상황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숨과 절규, 원망이 섞인 기도 뿐이었다

기도로 내가 얻었던 것은 그분께서 주신 온전히 남는 침묵 뿐이었다

나는 그 침묵의 무거움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곧장 아무런 변화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음에 대해 탄식하고 절망했다

그리고 난 머리 끝에 비듬처럼 붙어있는 내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이후 내 능력과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지금도 난 온전히 남는 침묵을 경험한다

힘주어 간구하면 아주 좁고 불편한 오솔길 하나를 주심을 경험한다

그 길을 걷고 계속 걸으며 덥고 춥고 답답함을 때로 원망하지만

그분이 없었다면 이런 길조차 얻지 못했을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안도한다

길을 걷다가 난 그분과 대화하고 항상 날 위무하는 그분을 보며 힘을 얻는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여건이 타인의 눈에 부족하고 허접해보여도

설령 조금도 그 상황과 여건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내가 걷는 좁고 불편한 오솔길의 끝에 광명이 드러날 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난 이 길을 열심히 걸어본

그 길에서 때때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웃기 힘든 상황이지만 누런 이를 드러내며 억지로 웃어보인다

 

 

앞으로도 이 길을 걸으며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글 : 김-랜도, 사진 : '효돌양'님. 사진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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