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우, 심심해”
이름 모를 잔디, 아니 이름 없는 잔디가 나에게 말했다. 잔디는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살고 있었다.
“일하는데 좀 이따 말해. 중요한 얘기 아니면.”
나는 계단식 영농을 하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의 한적한 곳으로 귀농한지 2년이 조금 넘은 초보 농부다. 주로 논농사로 쌀을 재배하지만, 집 근처 텃밭에는 고구마도 심고, 감자도 심는다. 어차피 3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농사든 밭농사든 제대로 수확해보지 못한 수준이다. 그래서 세 번째를 맞는 이번 농사에서는 저번 해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잔디가 말을 걸면, 아직 발라내지 못한 생선가시처럼 거슬리는 것이다.
“아, 그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문제가 생겼어. 그래서 그러니까 오늘 일 빨리 끝내고 마을 뒷산에 좀 와봐. 우리끼리 모여서 대책회의하기로 했으니까.”
“뭐, 회의? 갑자기 웬 회의야?”
“오늘은 꼭 와야 해. 와 줄 수 있지?”
“아, 알았어. 가야 하면 가야지.”
나는 잠깐 못했던 일을 했다. 텃밭에 자갈이 갑자기 많아져서 돌을 골라내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겉보기엔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적어도 신체 기관은 모두 있다. 또 바쁠 때 무단횡단을 가끔 하긴 하지만 그래도 커다란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도 - 내가 묻지는 않았지만 - 특별히 내가 결함이 있다며 궐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귀농하기 전에 다녔던 직장에서는 ‘우수사원’에도 뽑혀 상장도 받았으니까.
하지만 3년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온 강원도 산골짜기에 다다른 순간, 나는 안 좋은 기상여건으로 인해 농사는커녕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처한 환경이 평범한 직장에서 논밭으로 바뀐 데 대한 불안감과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겹겹촘촘 얽혀 엄청난 스트레스로 날 ‘짓눌렀다.’ 간절한 기도로도 무엇도 바꿀 수 없었던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어귀에서 사먹었던 소주 한 병 뿐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이런 고통이 지속된 지 45일 정도 되었던 때였다. 나는 다시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그날도 방문을 열어놓고 단칸방에서 소주를 먹던 날이었다. 계속 힘든 날이었기 때문에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분위기와 다른 것을 알아차리고는 온몸이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나는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그 공기가 나에게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이란 관념적으로 내가 느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음성과 음향의 총합으로 구성되는 ‘소리’로서의 실제 ‘말’이라는 것도 함께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분명 내 귀를 의심했지만, 공기는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매우 다급한 소리로!
“…우으우웅…”
처음에 나는 그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분간해낼 수 없었다. 우울한 사나이가 꼭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웅얼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듣기에 따라서는 음성이 아니라 적란운이 지나갈 때 심하게 움직이는 음향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생명체가 말을 하는 음성 쪽에 무게를 두고 더 유심히 그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렇게… 네가… 누가… 뭘…”
사실 정확하게 이런 음절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냥 내게 다가오는 공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람이 말하는 소리가 이런 비슷한 어떤 값으로 들리긴 했다. 공식으로 풀 수 있는 수학 문제였다면 난 정답을 이와 비슷하게 달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소리는 중요한 단어나 핵심적인 어휘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말의 알맹이가 빠진 말들이어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혹시 누구 계세요, 아니면 무슨 소리인가요.
나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죠?”
잠시간의 정적 끝에, 내 귓전에 또렷이 들린 소리는 이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놀래 방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방에는 누구도 없다.
“안 들리세요? 당신이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죠?”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나 귀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생명체는 있었다. 내가 며칠 전에 잡아 놓았던 찌르레기.
“그래요, 여기에요. 당신은 제가 말을 한다는 것에 매우 놀란 거죠?”
나는 굉장히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점차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좀처럼 이성을 잃지 않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성을 갖고 바라본단 말인가. 바람은 나에게 사람의 소리 비슷한 것을 내고 있었고, 찌르레기는 내 귀가 이상하지 않은 한 분명히 나에게 ‘말’을 - 그것도 예쁜 여성의 목소리로 - 걸었다.
“아, 예. 냉면이 차가운 것처럼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인간이 아닌 생물이 말을 한다는 것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요.”
“네. 불은 뜨겁고, 기름은 미끄러운 것 같은 당연함이겠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말이라는 기능이 소실되죠. 그런데 힘겹게 먹고 사는 인간들 모두는, 저희가 낼 수 있는 소리라는 것은 울음소리라는 것밖에 모르죠. 저희가 원래 말을 하는 기능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꿈도 못 꿀 거에요. 다만 공기를 쐬자마자 그 기능이 당장 사라질 뿐.”
나는 분명히 그녀, 아니 찌르레기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자마자 말하는 기능이 소실되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을 때나 감정을 토로하고 싶을 때 우는 소리밖에 낼 수 없다. 이 얼마나 소설 같은 이야기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흔한 해외 토픽 란에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보다 당장 네티즌 수사대의 힘으로 삽시간에 방방곡곡 이 모든 충격적인 사실이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하지만 난 콜럼부스도 아니고 아문센도 아니다. 최소한 이런 충격적인 사실이 있더라도 입방정을 떨고 폭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이곳저곳 회사를 옮기다가 경력사원으로 이번에 입사한 직장경험 10년차 과장처럼 나는 고압적인 자세로 그 찌르레기 녀석에게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말하는 능력이 소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나에게죠?”
“네?”
“왜 저에게 그 능력, 아니 말을 하셨냐는 건데요. 평소 같으면 그걸 숨기셨을 거 같아서요.”
“정말 보기보다 똑똑하시네요. 사실은 저희가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오빠한테.”
똑똑하다. 난 일종의 가치가 들어가는 말을 철이 들고 나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똑똑하다는 말을 누가 요즘 세상에 쓴단 말인가. 그런 말은 내 상식에는 초등학생까지의 어린이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오빠가 여기 오셨을 때까지, 사실 저희는 ‘말’이 필요 없는 생물체였어요. 인간이 나누는 대화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바람이 잔잔히 불면 얼마든지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 담고 싶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어요. 바람은 늘 우리 곁에 있으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의사를 우리만이 알 수 있는 그 어떤 느낌으로 바람에게 전해주면 되는 거였죠.”
음… 나는 묵묵히 찌르레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빠가 오시기 전까지 저희는 정말 평화로웠어요. 강원도 산골마을의 낮과 밤은 늘 한적하고 조용하죠.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때로 눈이나 비를 맞고, 구름과도 조우하며 의사소통했어요. 그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고, 항상 행복한 날이었죠.”
“그런데 내가 와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갑자기 올라온 뾰루지 같았겠군요.”
“그래요. 한동안 우리는 멍해졌다가 이내 불안했어요. 이대로 괜찮을지. 인간들은 저희에게 거의 늘 나빴으니까. 그저 자기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지, 우리들이 고통받는 것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요. 당장 우리는 사시미로 베여 여러 갈래로 예리한 상처가 남고 있는데. 하지만 오빠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내가? 나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바쁜 한량에 불과하다. 대중교통을 타다가도 다리가 아프면 앉아야 하고, 더우면 에어컨을 강으로 털어놓아야 하며 추우면 온풍기가 안 되는 회사를 욕하던 나였다.
“물론 오빠도 살아야 하니까, 집을 짓고 밥을 먹고 잠을 자긴 했지만. 불청객 치고는 저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시더라고요. 흙으로 집을 짓고 밥도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만 드시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쓰레기가 거의 안 나왔고 깨끗하게 치워주셨으니까요. 처음엔 우리도 화가 나고 다 죽을까봐 불안해서 성난 바람도 내고, 폭우도 쏟아지고, 그랬는데 있다 보니 믿음이 생겨서 그만둔 거에요. 폭우도, 안개도, 천둥도, 기상 악조건도, 땅의 기운까지, 모두 다.”
나는 귀농하기 전에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귀농 수업을 들었다. 귀농하는 곳에 가면 이전 인생은 다 없어지고, 농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아예 농사꾼으로 투신하고자 배웠던 기술이었다. 난 이런 식으로 참 잘했다는 성적표를 받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전에 저를 잡으셨을 때….”
알고 있다. 초등학교 때 곤충채집하던 습관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이 곤충을 곁에 두고 임처럼 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곤충에게 해를 입히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찌르레기는 나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단초가 없었지만 나는 찌르레기가 상당히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난 이 아이를 계속 볼 수 있었지만 얘는 좁은 환경에서 계속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난 꼼짝없이 죽겠지, 사형수가 죽듯이, 이렇게 생각했죠. 성질 고약한 사람은 저를 밟거나 제 몸을 터뜨리고, 온순한 사람은 이렇게 밀폐된 곳에 저를 가두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처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죠.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도 못하면서.”
난 찌르레기의 말을 들으면서, 동거까지 했던 옛 애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하얀 목도리를 좋아하던 그녀, 그 ‘하얀 목도리’는 자신의 삶이 항상 진공밀봉된 과자봉지 안의 새우과자 같다며 하소연하곤 했다. 그렇게 한 바탕 싸우고는, 집을 나가버린 것이 하얀 목도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견딜만 했어요. 절 밀봉한 게 아니라 방 속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놔둬서. 전 도망가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냥 거기 있었어요.”
좀 의아했다. 난 곤충에게 잘 한 것이 없었는데, 난 교회에서 멋도 모르고 부활절 달걀을 하나 더 받은 아이처럼 공짜로 보너스를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보너스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난 돌부리와도, 바람과도, 빗물과도, 기타 모든 개체와도 인사를 나누고 기쁘게 살아왔다. 성경에서 말하는 ‘항상 기뻐하라,’는 경구를 도시에서는 실천할 수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 자연의 모든 개체와 어울리며 체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잔디는 왜 저녁에 보자 했을까. 잔디는 태생이 느긋한 성격이다. 애초부터 누군가의 관리도 필요 없고, 자라는 목적도 없이 그냥 무한대로 뻗어나가면 되는 풀인 것이다. 그런 잔디가 다급한 목소리로 회의를 하자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길로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하자, 잔잔했던 바람이 산들산들 불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마을의 모든 개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 빗물의 경우에 한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중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바람이 모든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왔니? 저녁에 쉬어야 하는데 불러내서 미안해. 거창하게 회의까지는 아닌데….”
바람은 저녁을 반쯤 남기고 돌아서는 먹보처럼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왜, 무슨 일 있어요?”
“…개발.”
구구한 설명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이 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온다는 사실은 9시에 9시 뉴스가 한다는 것만큼이나 상식적인 일이 되었다. 이 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동안 골프장 업체가 골프장을 짓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군사시설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골프장 업체와의 지루했던 공방전이 끝난 것이다. 그런 것 쯤은 지역신문을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바람의 표정은 이미 심각했고, 바람이 내 뺨에 내뿜는 공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차가워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당초 이해관계라는 말이 두 주체 간에 성립되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골프장 업체와 지방자치단체는 운동회의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자체에서는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에, ‘옛날 친구였다 잠시 소원해진 동지’를 다시금 끌어 안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다 또 자기들만의 비즈니스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잠시 안녕을 고하겠지.
이 지역 - 물론 내 논밭은 말할 것도 없는 내 사유지라 제외한다고 해도 - 의 대부분이 골프장으로 바뀐다면 이 친구들은 심각해진다. 원래부터 자라고 있던 온갖 종류의 나무와 풀, 웅덩이 등의 생명은 금속제 굴착기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고, 대신 국적이 불분명한 ‘양식’ 잔디가 드넓은 골프장에 심어질 것이다. 그것은 나 같은 인간이 보기에는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뜻 없이 마시는 종류의 위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사가 달린 무시무시한 일인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바람이 전해주는 빗물, 잔디(이 친구는 자신이 몽땅 깎여나갈 것이라면서 울먹였다), 웅덩이(자기 몸이 홀랑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한탄했다), 돌멩이(운이 좋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쓰레기장에 버려지겠지만, 재수가 없다면 굴삭기가 내 몸을 파버릴 수도 있음에 경악했다) 등등의 말로 할 수 없는 고민을 들어줘야 했다. 선천적으로 기득권을 취해버리지 못한 나였지만,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원흉인 두 주체와 ‘인간’이라는 벗기기 힘든 꺼풀을 공유한 놈이지만, 공기 중에 사라질 이들의 낙서가 안타까워서 계속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설마 우리가 염려하는 그런 난리가 벌어지더라도, 우리의 원래 모양이 반 이상이나 휑뎅그렁하게 날아가 버린다 하더라도, 우리 정체성을 훼손하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나도 그런 파괴를 일삼는 그냥 그런 인간일 뿐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할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써볼게.”
내가 왜 이렇게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들에게 죄를 짓는 똑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부끄러운 자아를 관통하여 음성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작은 울림은 바람을 통해 모두에게 전해졌다.
난도질. 인간들이 보기에 개발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친구들의 심술로 일주일 정도 폭우가 쏟아지긴 했지만 날씨는 바꿀 수 있어도 장기적인 기후는 바꿀 수 없었다. 억센 잔디를 다 몰아내고, 가기 싫어하는 듯한 돌을 다 골라내고, 웅덩이를 고운 모래나 흙으로 가득 채웠다. 골프장 업체에서는 접근성이 우월하고 경치가 좋은 이 대지를 이제 골프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격앙되어 있었다. 높은 펜스 우편에 바로 내 농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처음 공사가 시작된 날부터 바람을 통해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충격을 받아서 실어증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인간들이 너무 많아짐에 따라 입을 아예 다물어 버린 것인지, 개체가 소멸되어 이제 이 땅엔 어떤 대화 가능한 상대가 없어져 버린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답답했지만 나는 손발이 꽁꽁 묶인 인질범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바람과 대화를 했는데 이제 골프장이 건립되면서 바람은 입을 다물어버렸어, 라고 말했다가는 미치광이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물론 내가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것은 아니다. 난 약속을 해놓고 뒤에서 딴청만 피우는 잡놈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인제군청에 건물 건립이 우리 농장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법적 절차를 의뢰했지만 그것은 자연스레 군청에서 기각처리되었다. 탱크로 침입해오는 적군에 장총으로 상대가 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골프장 업체에서는 내게 승전보를 부부젤라로 외치며 50만원의 위로금을 송금해주었다. 맥이 풀린 나에게 업체에서는 이런 말을 서면으로 덧붙였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도의적인 책임을 집니다.’
도저히 난 ‘자연이 아파서, 아프다고 말해서’ 이런 짓을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조치는 그게 다였다. 아무리 내가 생태학자가 되어도, 환경론자가 되어도 이미 ‘합의’가 끝난 일을 돌릴 수는 없었다. 전문가들이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이를 증명한다 하더라도 수십 년에 걸쳐 전례가 된 많은 골프장이나 대형 위락시설이 모두 문을 닫을 수 없으니까. 소위 ‘화성인’이 되더라도 이들을 대변하여 소정의 성과가 있었다면 다르겠지만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는 그냥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냥 계란격석(鷄卵擊石)일 뿐.
아마도, 그래서 이 친구들이 소멸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인간 탈을 쓴 모두를 이제는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어렵사리 열었던 문은 쾅, 하며 닫혀버렸다.
나는 찬바람을 맞으며 공사중인 골프장 펜스 옆의 농장에서 오늘도 농사를 지었다. 흙먼지 때문에 잘 안 되는 농사도 농사지만 홀로라는 적막함이 나를 더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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