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엔, 셋

당신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공기를 통해 고막을 통해 편견을 통해

곡해하지 않으려고 왜곡하지 않으려고

이야기 하나하나 곱씹어 듣고 생각한다

머리는 바쁘고 마음은 쿵쾅 뛰며 입은 적당한 시간에 움직인다

깔깔 호호 하하 웃고 떠드는 모습에 마음을 놓아본다

셋이었다가 나 약속 있어, 하고 둘이 되어도

우리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자리엔, 하나

이윽고 당신이 떠나고 난 뒤 생각한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당신의 생각을 하나도 읽을 수 없었으며

당신이 오늘 보여준 면적보다 몇 배는 넓은 면적이

암흑으로 뒤덮여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이 시끄러워서도

당신이 말을 못해서도

내가 못 들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모든 행동이

이렇게도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몇십 년 간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인 것은 기적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것도 기적이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미안하다

당신의 목소리 일부를 공기중에 그냥 흩어지게 만든 것

당신의 작은 몸짓 일부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 것

당신이 자르고 온 머리를 알아보지 못한 것

당신이 새로 산 지갑을 눈치채지 못한 것

 

 

이런 만남들

오래 지나 느끼는 것은 혼자라는 안도와 체념

또 리필된 후회와 아쉬움

 

 

 

글 : 김-랜도 / 사진 : 페이퍼다 별명 '결국엔독백' 님

 

(* 사진은 페이퍼다 paperda.com 홈페이지의 사진 게시판 중 '결국엔독백' 님의 사진-'금요일 오후의 커피 한 잔이 있는 풍경'입니다. 밝히고는 퍼왔지만 그래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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