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육 년간

그녀라는 문서철에는 많은 결재서류가 쌓여 있었다

문서 보존연한이 다 되어 이제 세절기에 넣어버려야 한다

갈아버리기 전에

자욱한 먼지를 후후 불어내고

마지막으로 문서 내용을 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기에는 기쁨도 행복도 슬픔도 아픔도 미움도 녹아 있겠지

하지만 다시 반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세절기는 많은 문서를 종이가루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너라는 문서철을 만들고 있다

예쁜 라벨지로 제목에

'너와의 추억'이란 문구를 깔끔하게 달아놓고

새로 시작하는 추억을 결재하고 문서번호도 예쁜 태그에 적어 붙여놓는

나쁜 문서의 비율을 줄이고 좋은 문서만 가득 채우려고

결재받기 전에 문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문서를 아름답게 다듬는 게 아직 서툴러

두렵고 고민되지만

너나 나나 신이 주신 선물임을 믿기 때문에

다듬어지지 않아 부끄러운 나를 잘 정리해본다

언젠가는 좋은 남자가 될 날을 믿으며

하루하루 꾸준하고도 열심히 노력한다

 

 

너와의 문서 보존연한은 만 년 쯤 되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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