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꽁꽁나무와 친구가 되었어요>
“구구야, 피피야.”
피피의 그림동화책에서 봤던 요정의 목소리 같은 게 들렸던 거죠. 만약 요정이 있다면 그런 목소리였겠죠? 그 정도로 예쁜 목소리였죠. 물론 두 꼬마 돼지는 요정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 같았어요.
“구구야, 나 라라야. 고집쟁이 꽁꽁나무가 날 묶어놨어. 너 위를 보라고.”
그래요, 예쁜 반딧불이 라라 목소리였죠. 꽁꽁나무가 라라를 꽁꽁 묶어놓은 탓에 라라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몇 시간이나 거기 있었던 거예요! 구구와 피피는 살이 너무 많아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지만 라라의 위치를 금세 알 수 있었지요. 라라가 보내는 맘대로 불빛 때문이었어요. 구구와 피피가 꽁꽁나무를 보니 라라는 정말 꽁꽁나무 가지 끝에 잡혀 있었어요.
“라라야, 꽁꽁나무가 널 가둬서 많이 아프지? 내가 금방 꺼내줄게.”
피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앞발로 꽁꽁나무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구구도 같이 꽁꽁나무의 튼튼한 밑동을 같이 때렸지요. 그런데 꽁꽁나무는 전혀 아프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무 소리도 없었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두 꼬마 돼지는 지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꽁꽁나무를 때리기도 하고 간질이기도 했는데도 꽁꽁나무는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야, 꽁꽁나무! 예쁜 라라는 우리 친구야. 그만 괴롭히고 라라를 빨리 풀어줘.”
피피가 어른 돼지들이 쓰는 말투를 흉내내서 꽁꽁나무에게 말했어요. 혹시 꽁꽁나무가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그런데 꽁꽁나무가 드디어 입을 열었어요!
“싫어.”
꽁꽁나무는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어요. 피피는 꽁꽁나무의 대답에 용기를 얻어 다시 물었어요.
“왜 싫어? 라라가 너의 거친 가지 때문에 아파하잖아. 네가 오래 붙들고 있어서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도 못하고 있어. 맘대로 불빛도 나무에 다 가려서 보이지도 않잖아. 힘들어하는 라라를 풀어줘.”
“싫어! 풀어주면 나는 또 혼자 있어야 하잖아. 오랜만에 예쁜 벌레가 와서 같이 놀고 싶은데 왜 자꾸 풀어달라고 해? 난 여기 천 년을 서 있었는데 혼자 그렇게 오래 있으면 얼마나 힘든지 아니? 비도 오는대로 다 맞아야 하고, 뜨거운 햇살도 내리쬐는 대로 다 맞아야 해. 남쪽 숲에는 홍수도 네 번이나 났고, 불도 세 번이나 났어. 난 그때마다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는 줄 알았지. 너무 뜨거워서 타버리는 줄 알았고.”
그때 꽁꽁나무는 잠깐 말을 멈췄어요. 꽁꽁나무 옆에서 구구와 피피는 꽁꽁나무의 말을 다 듣고 있었어요. 가지에 묶여있는 라라도 물론이었죠. 그리고 꽁꽁나무는 라라를 묶고 있던 가지를 슬쩍 풀어주었어요. 라라는 하루 동안 쓰지 못했던 갈색 날개를 퍼덕이며 꽁꽁나무 옆에 있었어요.
“처음에는 나도 잘 생긴 나무였어. 오래전에 동물들은 나를 예쁘게 쓰다듬어주기도 했고, 좋은 말도 많이 해줬지. 그런데 그렇게 홍수도 나고 불도 나고 그러면서 난 살도 찌고 얼굴도 까매졌어. 태풍 같은 게 불면 가지나 줄기도 거칠어지고. 어느새 내가 공포 영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무서운 나무 같은 게 된 거야. 동네 동물들한테 잘못된 소문이 돌아서 모두 나를 피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난 오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바람이나 비나 벌레들이나 꽃들이랑 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
구구와 피피, 라라는 꽁꽁나무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꽁꽁나무가 천 살이나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얼마나 심심했을지 알 것 같았어요. 꽁꽁나무는 친구들만 꽁꽁 묶었던 게 아니라 마음도 꽁꽁 얼려 있었던 거 같았죠.
“난 오랜만에 내 주변에서 날고 있던 예쁜 벌레랑 같이 놀고 싶었던 것 뿐이야. 근데 라라라고 했어? 날개 많이 아프지? 나름대로 살살 잡은 건데 아플 줄 몰랐어. 내 가지가 워낙 거칠어서 아팠구나. 정말 미안해.”
“아냐, 피가 난 것도 아닌데 괜찮아. 아까는 날개를 파닥거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네.”
그리고 두 꼬마 돼지와 예쁜 라라는 시무룩하고 심심해하는 꽁꽁나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어요. 꽁꽁나무는 길고 풍성한 가지로 바람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라라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맘대로 불빛을 반짝거리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어요.
남쪽 숲 한가운데서 한참을 놀던 모두에게 어둠이 찾아왔어요.
“이제 우리는 가봐야겠어. 어두워지면 숲을 못 나가서….”
구구의 말에 꽁꽁나무는 아쉬워하며 물어봤어요.
“꼬마 돼지들, 그리고 반딧불이야. 내일도 나한테 와서 같이 놀아줄 수 있니?”
피피가 신나는 얼굴로 대답했어요.
“그럼! 내일도, 모레도 같이 놀자. 꽁꽁나무야, 내일도 시원한 바람 많이 만들어줘, 알았지?”
“당연하지. 내일 꼭 와.”
아쉬워하는 꽁꽁나무를 뒤로 하고, 두 꼬마 돼지는 어두운 숲길을 라라가 비추는 불빛을 보며 걸었어요.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집에 갈 수 있겠다. 라라야,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정말 고마워.”
이렇게 말한 구구는 별로 아쉽지 않았어요. 내일 또 라라랑 꽁꽁나무랑 놀 거거든요.
“잘 가!”
라라는 날개를 파드득하며 불빛을 맘대로 깜박깜박했어요. 라라도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았지요.
두 꼬마돼지, 구구와 피피는 집에 들어가는 길이 정말 행복했어요. 좋은 친구가 두 명이나 더 생겼잖아요. 라라도, 꽁꽁나무도 구구와 피피를 그렇게 생각하겠죠? 매일 남쪽 숲에는 모두에게 재미있는 일이 많을 거예요.
다행히 오늘 구구는 넉넉 아줌마에게 늦게 들어가서 혼나지 않았답니다. 저녁밥을 먹기 전에 들어갔거든요. 넉넉 아줌마가 해주는 햄 반찬, 소시지 반찬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죠. 내일 재미있게 놀 생각을 하니 아마 더 맛있었을 거예요. (끝).
(* 근래 가장 공들여 습작한 '귀여운 돼지 구구' 마지막 편입니다. 이 글을 초안으로 여기고 잘 손질해 이름있는 출판사에 내 보면 욕먹으려나요~ -_- 어쨌든 21-1부터 쭉 읽으시면 대충 내용이 연결될 거에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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