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인터넷하다가, 세연넷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어떤 글을 우연히 보았다.

 

 

 

 

제목 : 너희는 인생에 대해서 좀 생각해봤냐?(일반)
글쓴이 : 익명(65424f)
추천 : 1 / 반대 : 0 / 조회 : 227 등록일 : 2012-05-26 00:14:38
1개의 답변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글주소 : http://www.seiyon.net/2.0/anony@308372

 

 

그냥
스펙쌓고 학점따고
취직하는게
끝이 아니잖아

고학년이 되고
곧 사회나갈 생각을 하니까
그냥 멍해진다

결국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그냥 그렇게 저렇게 애 키우는게 끝인건가

난 근데 진짜 이렇게 살기싫은데

이런저런 경험도 해봤고
잠시 일도 해봤는데
대체 그냥 있다가는
불행하게 평생 살것같애

지금 하고싶은건 있는데
대체 용기가 없으니 원..

뭘 원하고 뭘 바라고 뭘 하면서 살아야할지
답은 안나오는건 똑같은데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본적은 있냐?

어후 어차피 답이 있는것도 아닌데
결국 내 인생 내가 사는건데
하나도 노력은 안하고
또 이렇게 전전긍긍만 하다가
세월에 치여서 이렇게 저렇게 살겠지
그런 생각만하면 아찔하다

무언가 계기가,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합당한
노력을 가져야 하는데
대체 난 그런 시발점이 없어
막상 하기도 전에 왠지
취직안하면 안될 것 같고
밥 벌어먹기 겁나고 그래

 

 

 

 

  내가 입학해서 지금껏 풀리지 않았던 고민을 담고 있던 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줍쟎게 이런 댓글을 달고야 말았다.

 

 

 

익명(000991) 12-05-27 15:02:39 ( No 37 ) 

 

지나가던 99학번입니다.
제가 인생을 단지 몇 년 더 살았다고 어줍잖게 뭔 충고 같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 오해 마세요.
(단지 이 글이 계속 제가 입학하면서 지금까지 느껴왔던 생각과 무관하지 않아서 반가운 마음에 남기는 댓글입니다)

본문에서

결국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그냥 그렇게 저렇게 애 키우는게 끝인건가

단순하게 말로 표현하면 그게 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마 아닐 겁니다.
제 동기나 선후배들 보면 직장 잡고 결혼해서 애 키우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이 겪는 사람들의 인생 과정이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의미이고 배움의 나날이라 하더라고요.
물론 아무 상관없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는 단일화된 제품처럼 그저 그런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지요.

뭐 물론 그런 인생과정 자체가 지루하고,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틀을 '과감하게' 바꾸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애쓰겠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그 길에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볼 때는 그런 지루한 세상의 틀을 벗어났다고 보긴 어려울 겁니다.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다'고 느낄 수도 있는 거고요.

말이 주절주절 길어졌네요. 어쨌든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의 말이라 공감이 가서 저도 댓글 한 번 날려봅니다. 부디 그런 고민들이 인생을 사는데 생산적인 부분으로 승화되길 바랍니다.  

 

 

  아마 너무 늦게 댓글을 올려서 이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미하게 아무 표정없이 걷는 사람들, 그냥 그렇게 지나쳤던 사람들이 나처럼 인생에 대해, 자아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도 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댓글에서는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내 생각대로 맘대로 말했다면 이렇게 적었을 수도 있었겠지.

 

 

  지금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어디에요? 딴 것 생각하지 말고 뛰어드세요. 저는 소심해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삶이라는 벽이 너무 두터워서, 지금 일단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벌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서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저같은 겁쟁이로 계속 살면 나이가 들어서 결국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답니다. 제가 그 나이라면, 조금만 집안 형편이 나았더라면 당장 뛰어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지나가버리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은 빠져나가기만 했죠.

  카드 게임을 할 때도 결국 내가 쥐고 있는 카드를 던져야 새 카드를 받는 거 아니겠어요? 새 카드가 행운의 카드일지 불행의 카드일지는 뒤집어 보아야 알겠지만 결국 새 카드는 새 카드잖아요. 20대 초중반이라는 나이는 최고의 스펙입니다. 그건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그게 저는 정말 부럽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7.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