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지난 날 난 얼마나 많이 아파왔던가. 계절이 바뀌었다고 결막염과 알레르기 증세,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발등 통증, 또 옆구리가 아파서 보니 신장에는 돌이 차 있었고 이제는 갑상선기능저하증까지. 나의 잔병치레의 종착점은 어딘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굴곡이 있는 길을 내달리고 뭔가 내 뒷모습은 내가 봐도 괜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길은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360도 회전하기만 무한 반복한 것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내가 죽겠는데(...)’ 노약자석이고 뭐고 간에 무조건 앉을 자리 하나와 잠시간(장시간)의 잠을 갈구했고, 겨우겨우 회사와 집만을 왔다갔다할 수 있었다. 동화 습작이나 정규직 이직이나 대학원 입학이나 다른 어떤 것을 생각(만이라도) 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회사에서는 민폐직원이 되기 일보 직전이고, 집에서는 겨우 한 달에 한 번 제 때 생활비를 가져다 드리는아들내미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난 갑상선이라는 말을 제일 증오하며 이 여름에도 추위에 떨고 마는 항상 띵띵 부어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독히도 고집스러운 나를 오래전부터 지켜보는 사람들은 계속 날 지켜봤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수는 나를 떠났다. 난 어떠한 경우에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시험분석사처럼 행동하려 노력했지만 그런 행동은 결과적으로 떠난 사람들의 빈축만 샀다. 나는 어떤 종류의 유연함을 받아들여야 개념찬 사람이 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난 항상 내 몫의 책임에도 엄살을 떨었던 무책임한 사람이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난 내 창문으로 빼꼼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 제각기의 창문으로 나를 보는 일상의 되풀이였다. 소통을 해도 난 그들의 얼굴형만 겨우 볼 뿐이고, 그들도 내 얼굴에 퍼져있는 기미 주근깨만 볼 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잘 지내는 일은 어떻게 해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학원 시험과 회사 시험을 가리지 않고 여러 번의 면접과 서류 전형이 있었고 대부분 나를 비껴갔다. 어쩌다 치러진 면접 시험에서는 내 비루한 가정사와 개인사를 피곤하게 털어내야만 했고, 수도승들도 지루해할 인터뷰는 덧없는 기대감만 남긴 채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린 인사담당자들은 나한테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고 도벽 있는 사람들처럼 그저 도망가버렸다. 또 그렇게, 가끔 역겨운 양감과 질감이 느껴지는, 회사--회사-.

  친구들이 그렇게 카톡이 안 된다고 비난하거나 조소를 띄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난 아직도 고장나지 않은 폴더폰의 액정만 유심히 바라보며 퇴근한다. 난 도대체 핸드폰 화면에 무엇을 그렇게 기대하는 것일까. 갑자기 화면에 로또 1등이라도 터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옛 애인의 뒤늦은 고백이라도 바라는 것일까.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라도? 외롭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치하고 쓸데없는 말임에 틀림없지만,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만의 치부라 생각하지만, 그런 벌거벗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키기 싫어 서둘러 난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어버리고 이금이 장편동화를 읽거나 잠이 들거나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다 명멸하는 커서를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너무나 서글퍼 울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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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6. 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