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란 대략 이렇다. 주위를 둘러보기 힘든 상황에,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머릿속에 과부하가 생겨버리는 상황.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떤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게 되고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나아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한껏 꼬여버린 실타래, 아니 이어폰 줄 같은 마음의 실마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때로 난 개선문을 위엄 있게 들어서는 장군 같지만 지금은 흥신소 사람에게 계속 쫓기는 빚쟁이 같은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계속 보게 된다. 책에 대한 감상을 올리지 않은 것은 그런 것을 올릴 겨를이 없었고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책들이 결코 함량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난 확실한 책만 잡으니까. (확실하지 않다면 내가 아마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몰랐겠지) 2주에 한번씩 꼬박꼬박 두 곳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고, 불규칙적으로 온라인 책 사이트나 오프라인 서점을 활용해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또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로는 이북(e-book)도 샀다. 책을 집으면 보물을 손에 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예쁜 그림과 귀여운 내용이 담긴 동화를 보고 있는 느낌은 정말 소중한 보석을 잡은 것 같은 느낌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책을 시간을 쪼개어 보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창작의 시발점이 되지 못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 써야겠다는 생각은 충만한데 소재거리나 이를 힘 있게 끌고 나갈 스토리라인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내가 처음 습작을 시작할 때부터 대두된 문제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난 참고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보고, 생각도 많이 해보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마음을 잡고 이를 글로 옮겨보면 이것은 글에 전혀 재능이 없는 초등학생이 설레는 마음에 밤늦게 쓴 글과 비슷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다음날 깨어나 그 글을 보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많은 상을 휩쓴 작가의 글을 보면(실제 대부분의 책이 이렇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질투와 부러움이 혼재된 마음을 갖게 된다. 실력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꾸준한 습작과 이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실력을 보여줄 습작의 산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내 삶 속에 설레는 일이나, 기쁜 일, 보람 있는 일, 이런 것들이 삶에 정촉매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어둠, 우울함 등의 정서와 가까워진다면 즐거워 죽겠는 아이들을 표현할 수 없다. 아이들의 신나는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낼 수 없다. 답은 쉽다. 내가 일이나 아르바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처럼 글 쓰는 행위도 매일 시간을 정해서 조금씩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함량이 매우 떨어지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연습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약속을 내 마음판에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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