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소설 읽어본 적 있니? 나 역시 원문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어떤 작가님의 소설에서 다룬 부분을 살짝 들여다본 정도였지만. 그 글에서 서로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나와.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기반을 잡기 위해 곰스크라는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지. 하지만 어떤 사정이 생겨 남자와 여자는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채 중간에 내리게 돼. 내린 곳, 그러니까 중간 경유지에서 여자와 남자는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며칠 더 지내게 되고, 또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또 이 곳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은 결국 곰스크로 가지 않은 채 거기서 일생을 지내게 된다는 내용이야.

  이 글에서 우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곰스크로 가면 행복했을 텐데’, 혹은 굳이 곰스크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더 나은 걸 택했어, 지금 행복하면 그만이지. 결국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이 정도? 나도 비슷했던 것 같아.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B(Birth)D(Death)사이에 C(Choice)가 있다는 교과서적인 말을 굳이 안 꺼내도 알 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겠지. 무엇을 먹느냐, 지금 무엇을 하느냐, 부터 시작하여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서 어느 회사에 입사하느냐, 무슨 사업을 하느냐 등. 그런데 그거 알아? 지금 같이 숨 쉬는 너와 나, 이 두 사람.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면 이 도상(途上)에서 서로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거 정말 신기하지 않아? 이렇게도 너를 향한 길은 좁았지만, 이렇게 만났다는 게.

  나만 해도 세상에서 많이 엎어지고 넘어지고 상처를 입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지. (물론 너도 세상 사느라 힘들겠지만) 지금도 뿌듯함과 후회는 내 삶에서 빠지지 않고 주렁주렁 맺혀있어.

  하지만 난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 내가 그냥 지난 회사에 계속 다녔거나 대학원에 갔거나 이제는 가버린 어떤 이성과 잘 되었다면, 그렇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틀었거나 턴을 했다면, 너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정말 많은 곰스크 중에 하나를 택했다면, 머물렀다면 너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을.

  요즘 우리는 이러저러한 외부 상황 때문에 힘들었지. 특히 나는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물 곰스크는 너라는 생각 때문이어서 그랬을까. 이렇게도 책임지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하지도 않는 내가, 많은 어려움에도 그냥 머무르려 하다니 말이야.

  세상 일, 참 모르겠지? 이런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거. 앞으로도 쭉, 괜찮겠지? 우리에겐 항상 그분이 계시니까. 더 큰 책임감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겠지만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시는 그분을 믿고 의지하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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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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