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회사에서 돌아와 그동안 한껏 복잡해진 기분을 정리하고 싶었다. 쓸데없이 쌓인 고지서나 잡다한 종이를 버리기 시작했다. 많은 카드와 편지들. 그렇게 책상 정리를 하다가 한참을 울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가 쓴 카드를 보고는.

 

 

  사랑하는 내 아들! 내년에는 이 카드를 쓸지 모르지만, 내 아들 늘 고생하고 이 늘은 부모를 고생을 너무 만이하는구나. 너무 고막고 향상 건강하기를 주님께 빌거야.

                                                                                                                  - 엄마가

 

 

  이 카드를 처음 받았던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울었고, 오늘도 울었다. 엄마가 진짜로 어디로 간 것도 아닌데, 엄마 글씨는 너무 많은 눈물을 담고 있어서 내가 너무 힘들다. 70대,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엄마 모습과 '내년에는 이 카드를 쓸지 모르지만'이란 문구가 겹쳐져 나를 정말 괴롭게 한다. 엄마 말대로, 정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엄마는 틀림없는 분이셨다. 섬세하고 꼼꼼하신 분. 무엇보다 자식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분이셨다. 그렇게 아들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생일에도, 엄마는 나에게 카드를 써 주셨다.

 

 

  하고싶어 하는 일 다 잘되었음 좋겠다. 사랑한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사랑하는 아들. 메리 크리스마스.

                                                                                                                  - 엄마가

 

 

  생일인데 맛있는것도 많이 먹고 건강하게 몸을 보호해야지. 사랑하는 아들, 생일 축하해.

                                                                                                                  - 엄마가

 

  물론 이 글을 통해 엄마와 나의 오랜 기간 이어진 많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휘발성 강하고 둔탁한 내 글로 엄마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삐뚤빼뚤한 엄마 글씨로, 엄마 말투로, 엄마 어휘로 쓴 카드를 보며 나는 내가 보았던 엄마의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가난과 고생으로 점철된 처절한 날들이 느껴진다.

  못난 아들만 바라보는 엄마의 사랑을 언제쯤이면 다 알 수 있을까. 큰 아들이 당신보다 먼저 이 세상과 작별했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생활비 드리고, 같이 사는 것만으로 작은 아들된 본분을 다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몸도 힘드신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춥다. 무섭다. 자신감은 바닥나고,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날이 하루씩 없어진다. 이 무서운 세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무섭다. 실컷 울었지만 또 울고 싶다.

  슬프고 슬픈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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