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겨울, 나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합격.

의외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달뜬 기분. 나는 '기인열전'이라는 프로에라도 나가 공중부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쁨의 영역에 한정될 뿐이었다. 결코 '내가 잘해서 된 거야,'라는 인과의 범주에 닿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만용같은 겸손은 아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였다, 고 말하는 것은,

그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것.

내 성과물은 평소에 멀리뛰기 선수가 자신의 최고 기록을 1미터 이상 경신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어떻게 내 능력으로 이를 돌릴 것인가, 그것은 다분히 예의 없고 무책임한 태도인 것이다.



일엽편주에 내 몸을 의지한 채 말 그대로 쏜살같이 13년이 흘렀다.

그것이 코 한 번 흥, 하고 풀었다고 그 세월이 흘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는 '모년 모월 모시'에 대한 기억이 전무했다.

그저 대부분에게 유익한, 그러면서 내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는 일들만 도모했을 뿐이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보내다 보니, 세월은 하릴없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독수리 오형제처럼 지켜준 것은 예배당의 십자가였다.
 
소예배실이 없어진 것은 교회에 다소간 화가 났지만

그래도 나는 집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숨쉬는 순간마다

"온전히 남는 침묵"이 나와 함께였다. 감사하게도, 여전히.



나의 오래된 테이프와 함께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 16곡을 소개한다.

세세한 이야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 그래서 나를 '울린' 가사 일부를 적는다.



1. More than Wonderful - Sandi Patti

He's more than amazing, more than marvelous

More than miraculous could ever be

He's more than wonderful

That's what Jesus's to me




2. 서른을 바라보며 - 여행스케치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들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후회하지 않아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들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후회하지 않으리




3. 뽐므에게 - Ravie Nuage 

어느 날 나에게 물었지, "어디로 갈까?"

한걸음 내딛지 못한 채, 눈물만 흘러




4. 해피 엔드 - Toy

너의 앞에 서면 난 언제나 열 일곱 소년

너에겐 세상 제일 멋진 남자 되고 싶은걸




5. 오직 예수 - 김명식

내 모든 승리로 주님께 영광을

나의 힘 나의 소망 오직 예수




6. I love you Song - Jubi

I love you

너의 곁에서 늘 나와 함께 빛나던 날들




7. 너무 다른 널 보면서 - 이소라 

너를 닮아가는 건 나를 잃을 뿐인데

그냥 여기서 널 기다릴게

이제 너무 다른 널 보면서




8. 모퉁이에서 - 노영심(연주곡)




9. 비노그라드바 - 냉수 한 그릇

내가 나 때문에 부끄런 날은 내가 나 때문에 속상한 날은

눈 덮힌 벌판으로 달려가 시린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하나님 제가 또 그랬어요"




10.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찬송가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우리 서로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11. 닮았잖아 - 이소은

아침엔 아무 일 없는 듯 담담하게 일어나 운동하고

거울 속 얼굴에 묻은 내 눈물의 흔적을 없애려 세수를 해

하지만 너는 남아있어




12. 완소그대 - 서영은

둥근 몸에 허리조차 없는데

평범한 내 모습이 특별해 보인대

거울보고 요리조리 살펴도 뭘 좋아하는 건지

넌 특이한 사람 좋아하나봐




13. 시계 - 브라운 아이드 소울

더는 사라지지 않는데 견딜 수가 없는데

지난 날 찾을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14. 지금은 새벽 세시 반 - WHITE

'잊으려고 애쓰는 건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난 이제야 알았는 걸

지금은 새벽 세시 반




15. 아침식사 - WAX

그댈 사랑해요

그댈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나 잘할 거에요

이젠 나 때문에 행복하도록 영원히




16.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며 - 김수지(Outro)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며 언제나 동행하여 주시니

메마른 골짝길을 다닐지라도

샘물이 터짐 같이 나의 삶 주 안에 거하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30. 09:49

무뎌진 입술 투박해진 내 손이

멈춰있던 내 맘이

살며시 녹아 부드러워져

 

가만히 들어봐

살며시 다가와

바람이 불어와 내게로

 

- 브라운 아이드 소울, 'Blowin My Mind'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바람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곡 'Blowin My Mind' 가사에도 바람이 나오고, 'My Story'에도 바람이 나온다. '바람인가요'라는 노래도 있고 나얼의 새앨범 타이틀곡도 '바람 기억'이다. 아마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아는 곡만 해도 꽤 많은 횟수의 바람이 이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에 들어가 있다.

  바람의 속성이 무엇인데 이렇게 다른 자연물보다 유독 애착을 많이 갖고 가사로 넣었을까. 바람이 불 때의 시원한 느낌, 고립되고 정체되어 있는 방 안의 공기를 환기시켜줄 때의 상쾌한 느낌,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러니까 속박에서 자유로 향한다는 느낌 같은 것일까.

  위에서 말한 모든 바람의 속성을 다 그네들의 노래 가사에 대입하여 생각해도 맞을지 모르겠다. 다 바람의 근본 속성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리 생각했다. 내가 정작 주목한 것은 바람이 내게로 불어오면 공허한, 허전한 내 마음이 바람으로 꽉 채워진다는 것이었다. 바람은 설레는 마음을, 속삭이는 메시지를, 아름다운 노래를 내게 가져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래서 비어있는 내 마음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채워지고, 냉증이 온기로 바뀌는 현상에 대한 생각.

  이런 바람을 온몸으로 맞게 되면 바람(wind)이 긍정적인 방향의 바람(wish)로 바뀌게 된다. 표정 없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게 되고 잠시나마 인류애와 세계평화 등을 마음 속에 품게 되기도 한다. 콧노래가 나오고 어깨를 살짝 들썩인다. 그야말로 내 마음에도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온다. 회사와 아르바이트, 기타 많은 신경쓸 일로 누적된 피로가 일시적으로 잊혀진다. 그리하여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Blowin My Mind'를 듣고 또 듣는다. 내가 현실과 충돌하느라 잠시 잊었던 바람(wind)과 바람(wish)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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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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