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 랜도
생각 8.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19. 22:47
0.
그렇게 외롭습니까.
그리고 그리하여 지금은 덜 외롭습니까.
- 황경신, '생각이 나서' 중
(PC통신, 채팅, SNS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하철에서 다들 핸드폰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이 분은 이리 생각했나 봅니다)
1.
나란 한심한 인간이란 영영 시를 쓸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시란 고고한 정신을 가진 육체가 터질 수 없는 심장을 고이 간직하다가 그 심장의 혈류가 이따금 역행하며 흘린 피로 쓴 울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시로 불리기 어려운 상태의 단순한 시적 감정 - 만일 그런게 있다면 말이다 - 은 내 주위를 유영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딪히는 공기 속의 한 입자를 마음의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이 시를 이루는 부스러기일까. 그렇게 내 주변을 서성이는 시적 감정에 대해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표현력이 부족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가끔 이 곳에 남기는 글 같은 것, 시라고, 소설이라고, 수필이라고 할 자격도 없는 그런 것은, 결국 내 마음 속의 어떤 깊은 감정이 쓰지 않으면 나를 압살해버릴 것이라는 외침에 못이겨 나오는 신음소리들일 뿐. 나는 의식적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는 늘 이자리다. 노력을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계속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난 유약하고 텅 빈 의자 같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나에 대해 이다지도 할 말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는 무언가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운명적'이란 말을 아무 때나 쓰진 않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쓰라고, 예쁘고 멋있고 눈부시도록 처연하게 쓰라고. 그런 외침에 비해 난 너무 작다.
2.
매일 너를 그리워해도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살아갈 텐데.
영원에 잇대어 나는 너를 완성하며
그렇게 지낼 텐데.
이제 너의 존재가 눈에 띄게 흐릿해지지만,
삶의 어떤 순간에,
어떤 사물에,
어떤 감정에,
너의 이야기가 겹쳐오는데.
뇌는 기억을 잊었다고 말해줘도
내 손 끝은,
내 배꼽은,
네 온도를 기억하는데.
그러고 보면 모든 생리심리학자들은
거짓말쟁이란 생각 안 들어?
아니면 나란 이상한 자아.
뇌가 손 끝에 붙어 있나봐.
이제야, 비로소,
아름답게 부풀어오른 내 상처는 괜찮아.
단지, 어쩌면, 아마도, 그렇게, 그저,
나는 네가 없는
이 우주를 뚜벅뚜벅 걷는 일밖에.
3.
며칠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휴일, 무료하게 TV를 보다가 좀처럼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 실력파 여가수의 라이브를 본다.
나를 만나보니 나쁜 점 알겠다고, 근데 좋은 점이 무언지 모르겠다며,
나란 여자 이렇지 뭐, 쉽게 질리고, 버려지고, 기다리고.
그냥 읽기도 벅찬 가사를 가사 속의 화자와 동일시하여 절절하게 외친다.
현실 속에, 최소한 나는 못 본 그런 여자. 콧대 없는 여자.
나는 그 여자와 관계도 없는데 괜히 가슴 아프다.
한숨 쉬면 하루가 지나가는 처연한 사람이라도, 불쌍한 감수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검색 엔진 님들께 이분의 근황에 대해 정중히 물었다.
실제로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신다는 이 분.
가수라는 직업 특성상 어떻게든 매스컴에 나와야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단지 노래 실력으로 음원을 장악한다니. 능력자.
너무나 쉽게 노랫속의 주인공과 이 가수분을 동일시해버리는, 단순한 나.
그리고 나와 이 분 마저 쉽사리 동일시해버리는, 단순한 나.
그렇게 느낀 것은, 나도 이 노래 가사처럼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어린 아이처럼 매달려 소리쳤'고
'이대로 놓치면 멀리 갈까봐 손에 힘을 주기'도 한 유치찬란하고 단순한 슬픔을 간직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