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49.
내 맘에 주여 소망되소서 주 없인 모든 일 헛되어라
밤이나 낮이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치 않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 같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 송정미 3집 ‘Hymns: 이전보다 더욱’ 중 ‘내 맘에 주여 소망되소서,’ ‘오 신실하신 주,’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어느 순간부터 보컬보다 연주를 더 주의깊게 듣게 되었다.
마음이 건조해질 때 신선한 습기를 채우고자 듣게 되는 가습기같은 노래들. 촉촉한 초코칩처럼 내 마음에 나쁘지 않은 땀내음이 배어나온다.
고등부 여름수련회 때 상품으로 받았던 송정미 3집 테이프 속의 찬송가들. 당시에는 찬송가는 매우 지루하고 경건하고 재미없는 노래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늘 먹던 새우과자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당시엔 들어도 송정미의 목소리만 들렸다. ‘송정미 목소리 뻔한 거지, 노래는 잘 하는데 좀 졸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보컬과 함께 재생되는 현악 소리와 피아노소리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휘감았다. 모진 세상풍파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제습기를 온종일 틀어놓은 것처럼 빡빡해진 몸으로 이런 음악을 들어서였을까. 나는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푸른 동산 한가운데 누워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편안한 그네를 타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어떤 손길이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을 나는 계속 잊을 수 없었다. 내 잠잠했던 감정선이 터져나오는 포인트는 매일 달라지긴 했지만, 이 앨범 전체를 듣고 있으면 꼭 이런 감정이 날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늘 발견하곤 했다.
…세상도 이렇다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 결코 나 혼자 잘난 맛에 살아가지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안 것이다. 내가 노래 안에 보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컬과 함께 하는 수많은 연주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 난 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아버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난 같이 걸어가면서도 혼자인 줄만 알았다. 옆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난 혼자라는 사실 - 정확히 말하면, 혼자라고 믿었던 사실 - 이 편해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성 때문에 잘 할 수 없었다. 내가 내두르는 서투르고 의미 없는 몸짓에 지쳐 흔적도 없이 돌아선 사람이 많았다.
난 이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내쉬는 한숨을 LPG 가스통에 담아놓았다. 방 한구석에 가스통을 차곡차곡 적재하면서 나란 인간이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모양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한숨 속에는 단지 외로워서 이기적인 쇠사슬로 사람들을 한 순간이라도 묶으려고 한 기억도 보였고,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끈이 점점 굵어져 사람들의 숨을 끊어내려는 듯이 요동쳤던, 단단한 동아줄로 바뀐 흔적도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싸늘하게 식은, 무관심 때문에 우리를 묶고 싶었던 알록달록한 끈이 아무 의미 없이 헐거워진 흔적이 대부분이었다. 난 그 가스통을 동 주민센터에서 사온 태그를 붙여 합법적으로 계속 버렸지만, 돌아온 탕자처럼 가스통은 어느샌가 다시 내 방에 처음 모양 그대로 와있었다. 찰거머리처럼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난 그를 내쫓지 못했다.
별들도 잠든 어느 늦은 밤, 나는 가스통과 동거하며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자작랩을 했다.
정나미 떨어진다고 나를 멀리한 그들의 심정,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착각 돋는 감정,
나날이 쌓여가는 외로움 마일리지는 함정,
내 옆에 좋은 사람들은 아직 남아있기에,
그분들께 실망만을 안겨줄 수는 없기에,
이제라도 사람 구실 좀 해봐야 하기에,
다 같이 사는 이 세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