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의 넋두리.
한마디로, 요즘 내가 더 구질구질해진 느낌이다. 할 말이 참 많았다. 근래 내 블로그를 통해 중고교 시절, 대학시절, 인턴기자 시절, 지난 직장 시절, 전 여자친구 이야기 등 부끄러워 좀처럼 들추지 않았던 이야기를 너무 많이 꺼냈다.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더 구정물 같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마 하지 않을 것 같다) 사용하지 않아 한 구석에 처박아놓은 서랍을 오랜만에 꺼내어 먼지낀 액자를 후후, 하며 불어댄 후 그 안에 민망한 포즈로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느낌으로. 마음속에 꽉 차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수 년 혹은 수십 년 간 마음 속 깊은 응달에 숨어 습기가 가득찬 이야기들을.
좀 건방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든 무엇이든 나보다 인생경험이 많은 분들, 나보다 훨씬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분들, 아무 생각없이 가벼운 마음에 인터넷을 켰다가 언제나처럼 신파조로 펼쳐진 글을 보고 부담스럽게 느꼈던 분들께는. 그런 많은 분들께 내 조그만 가슴으로 겪어온 삶을 무차별적으로 털어낸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글의 문체가 어렵든 쉽든 간에 순전히 개인적인 무엇인가를 자백한다는 것은 나 자신, 벌거벗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또 그렇게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내 삶의 지난 한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들추는 것은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말 그대로 나 혼자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닌데, 이 세상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도 많은데. 삼시 세 끼 뜨신 밥을 먹으며, 드러누워 잘 수 있는 내 방을 가진 사람이 겪는 고민이란 것이 얼마나 배부르게 느껴지겠는가.
그러나 내가 보는 쌍안경 속의 세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양버들처럼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성정을 가진 내게 이 세상은 모진 풍파와 같은 것이며, 그 자체가 어려움이었다. 겉보기에 많고 풍요로운 것 같은 선택은 신기루였다. 실제로는 많은 좋은 상황을 괄호치며 제한된 것만을 억지로 끌고 가야 하는 강제성을 띤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무조건 취직을 해야 했으며,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미한 사람들과 겉 같이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으며, 각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개념 있는 행동을 해야 했다. 선택받기 위해서. 그렇게 일상이라는 무미한 크래커를 매일매일 강제로 섭취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런 세상에서 질식하듯 살아가다가는 내가 아무런 발전도 거두지 못한 패잔병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문득 들었다. 그 발전이라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돈 같은 가치는 물론, 폐쇄적이고 내향적인 내가 사회적인 성향을 가진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남 앞에서 자만이 아닌 당당함을 갖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 일요증보판 같은 웃음,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 이런 광범위한 의미의 발전을 위해 나는 지난 구정물 같은 내 인생을 반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그런 반추의 과정이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변화의 계기가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그냥 내 부끄러운 인생을 늘어놓는 푸념으로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이야기는 어차피 한쪽으로 치우친 성향의 내 글에 대한 호오를 강화시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의 숫자를 더욱 제한시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가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무엇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발버둥을 쳐보고 싶었다.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고, 공기에 접촉시켜 따뜻한 위로의 손길로 반창고를 붙이고 싶었다. 난 실수가 많은 인간이고 열심히 사는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내 응어리가 생각보다 이렇게 많았음을 밝히고 스스로 그런 응어리가 소화기관을 거쳐 자연스럽게 배설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주고 싶었다.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자정작용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갖고 싶었다.
이런 시도가 무엇보다 내가 글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계획하는 여러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내 과거의 여러 실수와 행동이 앞으로 내 삶을 차곡차곡 꾸리는데 어떤 방해요소로도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시도가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나 자신을 꾸준히 갈고 닦기 위해 난 어떤 시도라도 할 작정이다. 아직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젊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