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즉흥 22-4(웃음가게에서 생긴 일).
“에이, 그냥 느낌 탓이겠지.”
“아니야. 내 느낌은 정말 잘 맞아. 이래봬도 내 육감은 정말 잘 맞는다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떤 산적 같은 남자가 나한테 오더니,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옆 테이블에서 지켜봤는데 너무 예쁘셔서요. 연락처 주시면 연락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거 있지? 뭐, 나도 퇴근하고 남자들 많이 나오는 패션 잡지나 보는 외로운 처자라 평소라면 몇 번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도 봐주겠지만 말야, 지금 상황과 장소가 영 아니잖니? 아마 그 산적 나리가 웃음시럽을 드럼통으로 먹고는 먼저 보이는 여자를 꼬신다고 생각하니까 싫었어. 내가 아무 여자나 될 수는 없겠더라고.”
“에이, 너 화장발, 조명발, 사진발 이런 거 안 해도 훈훈하잖아. 그냥 그 남자 보는 눈이 있었던 거야.”
“네가 사람 볼 줄은 안다니까, 자식. 어쨌든 아까 얘기 마저 할게. 몇 분 같은 몇 초가 어색하게 지나고, 나는 어쩔 줄 모르지만 최대한 예의 있게 미소를 보냈지.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른 채, 그 산적의 살짝 나온 뱃살을 눈여겨보았어. 그러다가 그 산적이 차고 있던 명품시계와 손에 쥔 명품 지갑에 눈이 멈춘 거야.”
“너, 그 남자 맘에 안 들었다가, 시계랑 지갑보고 연락처 준 거구나, 그렇지?”
“빙고. 그런데 나는 그 웃음시럽의 효과가 사랑과는 다른 욕구로 나와 버렸어. 명품 시계와 지갑이 너무 예쁘고 멋지다는 걸 넘었다는 걸 마음 속에서 알게 된 거지.”
“야, 너 그럼 혹시 그걸 도둑질하고 싶었다는 거야?”
“그래, 참 이상하지? 평소에는 그냥 저 사람들 명품 옷, 가방, 지갑, 그렇게 갖고 있는 것들 다 부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커피숍에 와서 웃음시럽을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내 몸과 마음이 적극적으로 도둑의 몸과 마음으로 바뀌는 거야. 참느라고 참는데 진짜 힘들더라고. 하여간 그 산적을 만나면 그것들이 다 내 것이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난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 남자의 이야기에 화답해주었지. 일단 나는 앞자리에 앉은 마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는 그 산적한테 딴 데 가서 얘기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
“너 너무 적극적인 거 아냐? 그냥 연락하다가 마음이 맞으면 다음번에 만날 수도 있잖아.”
“그 산적이 갖고 있던 명품 시리즈에 내 맘은 이미 홀렸다니까. 난 턱수염 일부러 기르는 남자 보기 싫은 사람이야. 진짜 내가 왜 그 때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그 산적이라는 남자랑은 어디 갔는데?”
“일단 웃음카페를 나왔어. 마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먼저 집으로 갔고. 나랑 그 산적은 일단 나왔어. 어둑어둑해진 가산디지털단지 역은 한산하더라고. 가끔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들이랑 떼로 몰려다니는 고등학생들만 빼고는 말이지. 나는 찬바람에 정신을 차렸어. 그리고는 그냥 시원한 아메리카노나 한 잔 더 마시고 적당히 헤어지려고 했는데 그 산적이 먼저 그러는 거야. 날도 더운데 치킨에 맥주 어떠냐고.”
(* 22-5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