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영수증.
스튜디오 앞에
오빠의 자동차가 있으면
오렌지 주스를 사가고
자동차가 없으면
쥐포를 사가지고 놀러갔었다
오렌지 주스 적중률 80%
머리 잘랐네 이쁘다
이런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
그러나 일년 만에
오렌지 주스 적중률 30%
오빠의 자동차는 자주
봄에 만났다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고 없었다
오늘 우연히 그 스튜디오 앞을 지나
은행으로 가는데
저쪽에서 오는 그 오빠의 자동차가 나를 지나간다
이젠 어깨를 넘은 나의 머리카락이 풍력계가 되어
자동차가 간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싫은데도 자꾸 그 방향으로만 가길래
울어 버렸다
2001년 2월 15일
도시가스요금 수납
105630원
한국 외환은행
- 『정신과 영수증』, 「김율원의 집 20010215」, 정신, 2004, 영진닷컴, p.43.
'영수증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진 스물다섯살 여자아이 이야기'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광고관련 일을 (2004년 당시까지는) 하고 있는(지금도 하고 계시겠죠?)
정신이라는 가명(필명)을 갖고 있는
이 누나의 책을 읽었다.
사람, 관계, 감성을 얽기 위한 어떤 매개가 된 사물을 구입하는데 따라오는
영수증이란 종이에 기록을 남겨
결국 이만큼 쌓인 영수증이 연결된 이야기가 되어
내 앞에 책으로 펼쳐졌다.
영수증이라는 판박이를 긁어낸 후 그 속에 보이는 고달픈 일상,
소소한 행복, 정 많은 누나의 사랑 이야기.
이 중 특히 사랑이 너무 많은 누나의 매력적인 이야기.
한 움큼 읽고 나니 나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졌다.
쉬운 글 속의 감동, 여운, 여백.
내가 갖지 못한 필력.
길은 아직 너무 멀지만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