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 랜도

정신과 영수증.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3. 14:16

스튜디오 앞에

오빠의 자동차가 있으면

오렌지 주스를 사가고

자동차가 없으면

쥐포를 사가지고 놀러갔었다

 

오렌지 주스 적중률 80%

 

머리 잘랐네 이쁘다

이런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

 

그러나 일년 만에

오렌지 주스 적중률 30%

 

오빠의 자동차는 자주

봄에 만났다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고 없었다

 

오늘 우연히 그 스튜디오 앞을 지나

은행으로 가는데

저쪽에서 오는 그 오빠의 자동차가 나를 지나간다

 

이젠 어깨를 넘은 나의 머리카락이 풍력계가 되어

자동차가 간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싫은데도 자꾸 그 방향으로만 가길래

 

울어 버렸다

 

2001년 2월 15일

도시가스요금 수납

105630원

한국 외환은행

 

- 『정신과 영수증』, 「김율원의 집 20010215」, 정신, 2004, 영진닷컴, p.43.

 

 

'영수증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진 스물다섯살 여자아이 이야기'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광고관련 일을 (2004년 당시까지는) 하고 있는(지금도 하고 계시겠죠?)

정신이라는 가명(필명)을 갖고 있는

이 누나의 책을 읽었다.

 

사람, 관계, 감성을 얽기 위한 어떤 매개가 된 사물을 구입하는데 따라오는

영수증이란 종이에 기록을 남겨

결국 이만큼 쌓인 영수증이 연결된 이야기가 되어

내 앞에 책으로 펼쳐졌다.

 

영수증이라는 판박이를 긁어낸 후 그 속에 보이는 고달픈 일상,

소소한 행복, 정 많은 누나의 사랑 이야기.

이 중 특히 사랑이 너무 많은 누나의 매력적인 이야기.

한 움큼 읽고 나니 나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졌다.

 

쉬운 글 속의 감동, 여운, 여백.

내가 갖지 못한 필력.

길은 아직 너무 멀지만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