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7.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인간관계나 남녀관계에 있어서 낙제점을 기록한 아이였다. 난 라면을 거의 다 먹고 찌꺼기를 남겨놓을 때 라면 한 가닥이 하수구로 빠지는 것이 싫어 젓가락을 완전히 냄비에 틀어막고는 라면 국물을 내버리고는 했다. 사람 관계도 이와 같은 줄 알았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함께 쓸려갈 때 나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자 온 정신을 기울였다. 난 아무개가 내뱉는 세세한 소리에, 행동에, 몸짓에 귀를 기울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때로 라면발이라 믿었던 것은 라면국물이 되었고 라면국물이 되었던 것은 하수구 속에서 라면발로 굳어져 나를 괴롭게 하곤 했다.
나는 삶 속에서 계속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인사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한 편으로는 한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길 원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몰아내버리고 있었다. 어릴 때는 내 이런 이율배반적 행위가 위선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줄곧 미워하곤 했다. 대학 시절, 고등학교까지의 의무적인 ‘반’이 없어지고 그것이 형식적인 ‘반’으로 재구성될 때 자연스럽게도 내 주변엔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 주변에 앉고, 나와 마음이 맞는 몇 명과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대학교 때는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어쩌다 나한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들을 붙잡아 세우고 넌 어디 사니, 넌 무엇을 좋아하니, 밥 같이 먹지 않을래, 같은 따스한 말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과 숫기 없음, 혼자 있음에 대한 편안함 등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항상 걷거나 뛰거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고립되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쓸모없는 돌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편화된 인간관계’라는 단어는 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전형적인 비유, 클리셰 같은 게 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난 전혀 사회화되지 못한 채로, 비를 맞아가며 어둠속을 쏘다니는 중부유럽 신사들의 우울함만을 간직한 채 실체 없는 전진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처녀자리라는 것을 모른 채 내가 허허롭게 웃어버리는 텅 빈 웃음만을 수용했다. 만일 내가 뺑덕어멈 같은 괴팍함을 보인다면 내 인생은 그냥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치 빠르고 영민한 타인은 모든 것을 눈치챘다. 나보고 그냥 특이한 사람이라고, 독특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 그저 ‘정상인 코스프레’에만 열중했지만 사람들은 내 코스프레만을 봐주는 얼뜨기가 아니었다.
내밀해야 하는 남녀관계에 이르러서는 참담한 결과 뿐이었다. 만남의 길이에 상관없이 난 모든 내 자존심은 헌신짝과 같은 것이라고, 내가 갑을 관계의 을이라는 생각만을 갖고는, 내가 하나님도 아니면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끝없이 주기만 했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의 극치를 혼자 달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집에 힘겹게 데려다주고 나서, 참지 못할 소변을 좌변기에 다 흘려가며 겨우 해결한 사람처럼 - 이제 혼자라는 생각에 -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근원적인 기쁨을 뒤로 한 채 아늑한 내 방에 와서 벌러덩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중간고사에 대비하여 공부한 학생처럼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OMR카드를 작성하는 그 시점까지만 반짝 집중했다. 중간고사가 지나면 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처럼. 그러나 이제 와서 내게 남녀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작성할 답안지는 여전히 유효했고, 수정해야했지만 수정액을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보다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나은 것이라는 원칙은 내가 항상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맥이라는 것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앞으로 잘 하면 되지, 라는 무책임한 말 속에 나를 넣는다면 공기 중에 분산되어 있는 원소들처럼 어려운 말들만 남기고 이제 흔적조차 없어져버린 지난 사람들의 편린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저 꼼꼼하고도 슬픈 눈을 가진 내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었을 뿐인데. 그래도 이제 다가올 사람들에게 환영회를 열어주고 당신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은 아픔만은 아니었소, 라고 떳떳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인가.
말해질 수 없는 고민들을 안고 반지하 내 방에서 본 별은 서울인데도 꽤 많았다. 나는 별의 궤적을 좆아 시선을 움직이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제로콜라를 꺼내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거울 속의 사내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조용한 건배. 그리고 악몽을 꿀 지 모르는 깊은 밤으로 거울 속의 사내는 이불만을 의지한 채 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