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5.
꿈. 악몽.
나는 방망이 깎는 청년. 방망이를 굉장히 열심히 깎았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결국 부질없는 짓이었다. 난 가만히 있는 것만 같고 남들은 저 멀리 뛰어가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가 버린 후 나한테 개그콘서트 ‘꺾기도’에 나오는 ‘쌍두사’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놀려대는 것 같았다. 왜 난 매 순간 모자란 놈 같아보이기만 할까. 왜 나만 이모양 이꼴로, (에이. 그만 하자.)
또 어떤 날은 메두사가 내 눈을 뽑아버린 것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미래도, 가족도, 생활도, 몸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반쯤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눈이 아프다고, 발이 아프다고, 마음도 아프다고 듣는 사람 없이 혼자 중얼거리며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다가 지쳐버렸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땅에 고정시키며 어슬렁거렸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버렸는데 메두사에게 뺏긴 내 눈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누가 내 마음을 땅에 떨어진 벚꽃 이파리처럼 흩뜨려놓았는지.
이 세상이 전부 나를 잊은 것 같은 며칠 밤이 흐르고, 진정 나 혼자 남아있는 것 같은 며칠 밤이 또 흐르고, 우물처럼 우울한 내게 세상은 어떤 말도 걸어주지 않았다. 나도, 세상도 어느 쪽도 할 말이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세상이란 데 할 말이 생긴다고 해도 모든 조직이 일제히 궐기하는 나를 위무해줄 재간은 없어보였다.
비현실적으로 밝아지는 약을 과다하게 복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약이란 게 평생의 안락을 보장해주는 수단은 아닐 건데.
또 약한 내 마음을 단련시키는 약을 과다하게 복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약이 있다 한들, 그 약을 먹는다고 한들, 상황이나 현실이라는 배설물은 여기 그대로 남아있을 건데, 포장만 그럴싸하게 한다고 그 눈부시게 은성한 배설물 냄새는 어떻게 할 건가.